박태준(朴泰俊)전총리의 ‘명의신탁’ 파문이 일자 박전총리측 인사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다.
국세청은 93년 5월 31일 “박씨(박전총리)가 가족 및 타인 명의로 282억원 상당의 부동산과 주식 및 예금 78억원 등 총 36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당시 박전총리의 소유재산을 일일이 역추적해 ‘돈세탁’ 과정을 추적했으며 박전총리가 88∼90년 포항제철의 32개 계열사와 협력사로부터 56억원의 뇌물성 자금을 받아 부동산 매입 등 개인 재산을 불리는 데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박전총리는 횡령 및 수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고 대검 중수부는 “56억원 중 29억원은 확실히 뇌물”이라며 박전총리를 불구속 기소했다.
▼부동산만 282억원…작년 신고액은 33억불과▼
그러나 당시 박전총리측은 국세청의 발표와 검찰의 공소내용에 대해 “정치 보복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박전총리는 93년 12월 일본체류 중에 “나는 무죄”라며 “당국이 (내가 회사돈을) 정치자금으로 유용한 흔적이 없자 시집간 딸의 주식까지 나의 재산이라고 발표했다”며 강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있었던 박전총리에 대한 세무조사와 수사는 95년 역시 ‘정치적 고려’에 따른 특별사면(공소취소)으로 묻혀버렸고 따라서 사건의 진실은 판결로 ‘확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진실은 가려질 뿐 사라지지는 않는 법. 박전총리의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진 조창선씨(60)가 세무당국을 상대로 낸 소송의 판결이 17일 내려지면서 박전총리의 당시 변명은 군색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박전총리측의 돈세탁 과정을 기록한 국세청의 93년 발표자료를 거의 그대로 인정했다. 판결문에는 박전총리측이 조씨와 친인척, 포철직원 등의 가차명계좌를 이용하거나 골프장 공사비로 넣었다가 빼내는 등 복잡한 돈세탁 과정들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박전총리가 원고로 94년 세무당국을 상대로 낸 소송의 97년 판결문에도 이런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한 법조인은 “93년 국세청 조사와 검찰 수사는 ‘정치 탄압’ 논란이 있었지만 그 내용만큼은 철저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라며 “박전총리는 93년 수백억원대의 재산이 지금은 왜 수십억원대가 됐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여를 했으면 증여세를 냈는지 여부도 규명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99년 박전총리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부동산 총액은 33억2691만원이지만 93년 국세청이 밝힌 박전총리 본인 및 가족, 타인 명의의 부동산은 282억원에 달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