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오른팔을 드러낸 승복차림으로 웃음을 잃지 않는 달라이 라마. 1940년 제14대 달라이 라마로 즉위한 그의 본래 이름은 톈진 갸초다. 올해 75세.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불교 라마교의 최대종파 겔루크파의 법왕(法王)을 지칭하는 칭호로 ‘큰 바다와 같은 지혜를 갖춘 스승’을 의미한다.
한국 불교계가 그를 모시기 위해 나선 것은 그가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종교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도 한국이 티베트와 함께 지구상에서 대승불교의 전통을 가장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형제의 나라’라고 평가하며 방한을 고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 그의 방한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이라는 걸림돌이 있어서 그렇다.
달라이 라마와 중국의 갈등은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강점하면서 시작됐다. 500만 티베트인의 정신적 지주인 그는 자신에 대한 암살음모가 나돌 정도로 상황이 급박해지자 59년 이웃 인도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세웠다.
중국은 그래서 망명지에서는 물론이고 제3국에서 행해지는 그의 모든 언행까지 ‘독립운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외국방문은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티베트를 되찾자는 말 대신 환경파괴 빈부격차 전쟁 종교갈등과 같은 세계적 난제를 해결할 나름의 지혜를 설파한다. 1989년에 그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것도, 그를 수식하는 칭호가 망명정부 지도자가 아니라 ‘정신적 지도자(spiritual leader)’가 된 것도, 미국 일본 등 세계 40여개국이 그의 방문을 허용한 것도 다 이런 배경 때문이다.
불교바로세우기 재가(在家)연대 등 그의 방한을 추진중인 불교계 77개 단체도 그를 평화와 자비를 가르치는 종교지도자 자격으로 초청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4월 달라이 라마 초청을 위한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하긴 정부가 약간의 용기를 내기는 했다. 지난달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이 탕자쉬안(唐家璇)중국외교부장에게 “한국 불교계가 달라이 라마에 대한 입국 거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며 “인구의 3분의1을 신도로 가진 불교계의 항의가 계속될 경우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을 꺼낸 것이다. 느닷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해 동티모르에 국군을 보내기로 하면서 ‘우리는 아시아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인권국가’라고 한 말을 생각하면 아주 생경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불교계가 달라이 라마 방한일정을 7월 21일부터 25일까지로 확정하자 외교부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치른 뒤에 논의해 보자”며 결정을 계속 미루고만 있다.
중국을 의식한 굴욕적인 자세라고 비난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자타가 인정하는 인권국가’에 걸맞은 태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외교 당국에 권하고 싶다. 중국에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한번 튀어보라고. 짐짓 모르는 체 하며 불교계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의연함을 국민에게 한번 보여주라고.
세계 60억 인구에게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자’는 화두를 던지는 종교 지도자를 초청하는 것은 편협한 헤아림이 필요 없는 일이 아닌가.
방형남 <국제부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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