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김정일이 중국 관계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준 한 단면”이라며 “김정일이 마음만 먹으면 극비에 부칠 수 있는 사실을 보도한 것 자체가 ‘북한의 가장 강력한 우방은 중국’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외교가에서 김정일의 방중(訪中)을 “가능성과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북-중 관계의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기 때문.
한 외교 소식통은 “남북정상회담을 열흘 남짓 앞둔 시점에서 김정일의 방중이 이뤄졌다면 이는 대내적으로는 ‘김정일 체제’의 정비, 대외적으로는 한미일 체제에 대응하는 북-중 공조 체제 강화 등 다목적용”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일의 방중이 사실이라면 이는 정상회담이란 대사(大事)를 앞두고 ‘김정일 체제’가 완전히 자리잡혔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란 풀이다. 특히 중국 방문 행사를 대규모 인사, 최고인민회의 예산 심의를 통한 경제 안정,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체제 안정 등 최근 진행중인 국가정상화 과정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북한으로서는 정상 국가로서의 기능을 위해 마지막으로 남았던 대외관계 개선에 치중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김정일 체제’ 출범 이후 첫 정상회담 파트너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되는 ‘부담’을 덜어내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대북 지원이 줄어드는 추세인 만큼 북한측에서는 김정일의 방중이 북-중간 ‘경제적 효과’로 이어질 것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북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민에게 ‘체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목적용 정상회담을 김정일위원장은 왜 비밀리에 진행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공개’ 방중을 요구하던 중국측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도 궁금해진다. ‘비밀 정상회담’은 회담 결과에 대한 부담이 서로 없고, 양국간의 끈끈한 관계를 확인시켜주며, 대내외적으로 ‘신비감’을 불러일으켜 사회주의 국가에서 선호하던 형식.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중국이 김정일의 ‘비밀 방중’을 수용했다면 뭔가 ‘특별한 고려’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