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과의 경우 천재지변이나 그에 준하는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 한 회담 개막을 불과 이틀 앞두고 일정을 변경한다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남북한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면 정상회담 연기를 외교 일반의 의전이나 관례의 잣대로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남북은 법적으로 아직도 휴전상태다. 더욱이 분단 반세기에 걸쳐 누적되고 증폭된 적대감과 불신이 채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끼리 만난다.
회담 연기가 ‘회담 무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정부는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고 있다.
180명에 달하는 남측 손님들을 보다 융숭하게 맞기 위해서 날짜를 하루 늦췄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는 것.
정부의 이같은 공식 설명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회담 연기요청에 대해서는 몇가지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회담일정의 과도한 노출에 따라 북측이 안전문제를 더 고려한 것같다고 말한다. 사회주의국가는 지도자의 일정 노출을 꺼리는 경향이 있고 북한도 예외가 아닌데 그동안 내외신 보도를 통해 두 정상의 평양일정이 상세히 노출되는 바람에 경호문제를 고려, 회담을 연기한 것같다는 것.
실제로 청와대는 그동안 언론(주로 남측 언론)이 두 정상의 이동경로(동선)와 각종 행사 등에 대해 너무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고 강하게 어필했었다.
또 북측도 남측 정부에 대해 같은 내용의 이의 제기를 했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주된 이유는 회담준비 때문인 것같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북한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의전이나 행사면에서 극진히 환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또한 사진송출 등 몇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은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담 순연으로 김대통령은 13,14일에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두 차례의 단독회담을 갖고 이후 공식수행원이 참석하는 확대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최영묵기자>y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