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김대중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방송에서 처음으로 공식 사용했다는 점이다. 북한 방송은 지금까지 김대통령을 ‘남조선 집권자’, 비난 방송의 경우 ‘외세의 앞잡이’ 등으로만 표현해 왔다.
북측은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대신 ‘남측’이라고 표현했다. ‘남조선’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도 진전으로 평가됐다.
한 북한 전문가는 “오후 5시 처음으로 평양 도착 소식을 다룬 북한 라디오 뉴스의 경우 ‘김대중대통령’이 14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3번 등장해 양적으로 거의 대등하게 다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보도 태도는 조선중앙TV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으로는 북측이 이번 방문을 뜨겁게 환영한다는 것을 계속 부각시켰다. 김위원장이 비행기 트랩 앞까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파격적인’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60만 환영인파의 모습을 비추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방송진흥원의 이우승(李雨昇)박사는 “방송에서 박재규 통일부장관,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 임동원 ‘특별보좌역’ 등 수행원들을 일일이 언급했다는 점도 대표단에 대한 존중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희호여사를 ‘부인’이라고 호칭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박사는 또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외세를 배격하자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 때 구체적으로 미국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며 미군 철수, 보안법 폐지 주장도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대 이창현(李昌炫·언론학)교수는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 대통령의 방문을 ‘사실적’으로 보도하고 평양시민의 환영 장면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의 움직임을 보도할 때 두 사람에 대한 조사나 어미 사용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김위원장에 대해서는 ‘∼께서는’ ‘사진을 찍으시었습니다’ ‘평양 비행장에 나가시어…’ ‘악수하시고 인사를 나누시었습니다’ 등 존칭을 사용했다. 반면 김대통령에 대해서는 ‘김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차에서 내린’ 등의 표현을 썼다. 또 대부분 김위원장을 보도 문장의 주어로 내세워 이번 회담을 김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부각시키려는 듯했다.
<허엽·강수진기자>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