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식면담 스케치

  • 입력 2000년 6월 14일 17시 39분


○…김대중 대통령이 14일 오전 9시45분부터 만수대 의사당에서 북측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가진 공식 면담은 예정보다 길어져 1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큰 회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건네던 김 위원장은 "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더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편안히 주무셨느냐"고 물은 뒤 김대통령이 "그렇다"고 하자 "한시름 덜었다"고 말했다.

양측이 서로 배석자들을 소개하는 도중 김대통령이 임동원 대통령 특별보좌역을 소개하자 김위원장은 "말을 많이 들었다"며 알은 체를 했다.

김위원장은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서로 갈라져 살아온 것은 우리 민족 탓이 아니고 전적으로 외세 탓"이라며 "우리 민족이 외우내환을 겪은 적은 있지만 1천년 이상 통일국가를 유지해왔다"며 반외세 통일론을 주장했다.

김대통령은 "우리가 28년전 7·4공동성명, 8년전 기본합의서에 합의했지만 실천이 없었던 것이 오늘까지 남북관계에 이어져왔다"면서 "이제 실천할 수 있는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기본적인 입장을 반복해 설명한 김영남 위원장은 김대통령에게 "대북 3국 공조에 대해 우리의 자주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국가보안법이 교류 협력에 방해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대통령은 "3국 공조는 대북 정책에서 바로 북한에게도 유리하고 우리에게도 좋은 모두 이기는 윈-윈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며, 결코 북측을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국회에 개정안이 제출돼 논의 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대통령은 "앞으로 남북간에 대화와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많은 대화를 통해 이견이 있는 부분은 해소해나가야 한다"며 단계적인 의견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또 이날 면담에서 장시간에 걸쳐 마음속에 담고있는 '속내'를 털어놓고, 북측이 이를 진지하게 수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음은 김대통령의 '호소'내용.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화해와 교류, 협력을 하는 것이다.그리고 통일의 길로 가는 것이다. 한반도 긴장완화, 이산가족 상봉문제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기탄없이 의견을 개진해 신뢰를 높여나가야 한다.

우리는 한 민족이다. 21세기 냉전이 끝나고 세계가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사회, 인터넷 시대이다. 이를 이겨내지 못하면 어떤 민족이나 국가도 비참해진다. 지금은 세계화의 시대이다. 세계 속에서 무한경쟁에 이겨나가야 한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인구, 자원, 자본이 많은 나라가 강대국인 영토국가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식혁명, 문화창조의 시대이다. 이제는 우리 민족의 시대가 왔다. 우리는 인구, 토지는 많지 않지만 조상들이 물려준 훌룽한 자산을 갖고 있다. 지식과 교육수준이 높고 문화 창조력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선대가 물려준 자산으로 일류민족으로 갈 수 있다. 우리가 합치지 않으면, 또 냉전을 선호하면 낙오할 수 밖에 없다. 그러새 이 시대의 통일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통ㅇ일을 주장하면서 55년을 분단상태로 살았다. 7·4공동성명에 합의한지 28년이 지났고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화해, 불가침, 비핵화 등에 합의한지 8년이 지났으나 진전이 없다. 남북관계는 말이 부족한 게 아니다. 또 문서가 부족한 게 아니다. 실천과 행동이 필요하다. 서로 만나 오해를 풀고 우리끼리 협력해 나간다면 서로 안심하고 살 수 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을 방문했을 때 북한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있었다. 나도 북한에 투자하라고 했다. '마음을 합치면 하늘도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주변국과 평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도 미국, 일본과 관계개선을 하는 것이 좋다. 교류협력을 하면 인프라와 세계 최고인 인력이 있다."

이날 회담에는 남측의 공식수행원 전원과 북측의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부위원장,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영배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 여연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송호경 아태위 부위워장, 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 이삼로 최고인민회의 부장, 정운업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회장 등이 배석했다.

면담장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 참관치 못해던 러시아의 이타르타스통신, 중국의 신화사통신, 조총련의 조선신보 기자들도 나타나 취재활동을 벌였다.

[평양=공동취재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