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의제/경협-기업투자]

  • 입력 2000년 6월 14일 19시 33분


남북한이 14일 정상회담에서 각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부 차원으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함에 따라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돼온 남북경협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무엇보다 남북경협의 기본 골격이 상대방의 ‘선의’와 ‘관행’에 의존하는 전근대적 방식에서 벗어나 ‘법’과 ‘제도’를 통한 공식 교류로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크다.

남북경협에 나서는 기업인들은 이제 실정법을 어기지 않는 한 남북 당국으로부터 국제규범과 같은 수준의 사업상 편의를 보장받게 됐다.

기업들은 대북사업에 따르는 정치적 리스크를 덜게 돼 북한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 남한은 국가신인도의 상승을 바라게 됐고 북한은 국제 금융기구 가입의 선결요건인 미국 등의 경제제재가 완화되는 효과를 기대한다.

▽어떤 제도가 필요한가〓당장 현안으로 부각된 대목은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 등 상거래를 원활히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완비. 우리 대표단이 이날 남북 경제공동위원회 구성과 함께 이들 협정의 조속한 체결을 촉구한 것은 이 문제가 남북경협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투자보장협정은 △북한진출 기업들이 북한에서 거둔 소득을 남한에 보내도록 하는 송금보장 △북한이 남한 기업의 재산을 임의로 수용하거나 압류할 수 없는 재산보호 △북한이 남한기업을 북한기업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내국민 대우 등으로 구성된다. 다만 남한과의 교역을 외국과의 거래로 보느냐, 내국거래로 인정하느냐의 문제는 미묘한 변수가 남아 있어 구체적인 내용은 실무협상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일부 항목에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북한측이 남북경협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 대부분의 조항이 손쉽게 합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해 외국인투자법을 개정해 경영상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북한내 기구 대신 제3국 중재기관을 거칠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이중과세방지협정도 남북한간의 과세 원칙을 분명히 한다는 차원에서 해결돼야 할 과제. 정부는 이와 함께 △대금결제가 손쉽게 이뤄지도록 하고 △거래상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하며 △방북 및 통관절차를 간소화하는 작업 등에도 나서기로 했다.

▽경협방식의 대전환 예고〓지금까지 남북 경제교류는 소규모 물자교역 위주로 이뤄졌다. 현대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대규모 투자협력 사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북한측의 개방의지에도 불구하고 대북거래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은데다 교통 통신망의 미비로 인해 물류비용 부담이 컸기 때문.

남북한 당국도 물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경협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을 인식하고 철도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방안을 주요 의제로 논의했다. 투자보장협정이 체결되고 교통망이 확충되면 경협사업의 전개방식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위탁가공 공장의 입지가 평양 인근에서 신의주 등으로 확대되고 품목도 섬유류 신발 등 노동집약 업종에서 전기 전자 기계류 등으로 다양화할 수 있다. 금강산과 내륙 관광지를 연계하는 관광코스의 개발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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