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문 서명 및 만찬▼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합의문은 이날 밤 11시20분에 두 정상이 공동 서명하고, 12시가 돼서 언론에 그 내용이 공개되는 등 ‘심야서명, 심야발표’의 진기록을 낳았다. 서명식은 백화원영빈관에서 열렸는데, 합의문을 2부 작성해 먼저 김정일위원장이 서명하고, 김대통령이 서명해 서로 교환했다. 이어 두 정상은 악수를 하고 취재진을 위해 손을 흔들어 포즈를 취하기도. 서명 직후 두 정상은 북측 김영남최고인민위원회상임위원장과 우리측 임동원대통령특보 등과 함께 샴페인으로 축하 건배. 특히 김정일위원장은 샴페인을 ‘원샷’으로 건배, 우리 수행원들이 웃으며 이를 따라 한꺼번에 들이켜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당초 두 정상은 이날 오후 6시 50분 단독회담을 끝낸 뒤 양측 대표단의 합의문 정리 절차를 거쳐 9시쯤 합의문에 공동서명할 예정이었으나 만찬 참석으로 인해 심야까지 지연.
이 때문에 취재진과 대표단 사이에선 한때 “합의문에 이견이 있는 것 아니냐” “발표를 하루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등의 억측이 난무.
○…김대통령과 김국방위원장은 정상회담을 끝낸 뒤 이날 저녁 평양 목란관에서 김대통령이 베푼 만찬에 참석. 김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이제 비로소 민족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며 회담 결과에 만족을 표시. 답사에 나선 김영남최고인민위원회상임위원장은 “이번 상봉과 회담을 통해 북과 남은 한 혈육임을 거듭 확인했다”고 감회를 표명.
○…만찬에서 우리측 수행원으로 참석한 고은 시인은 이날 오전 숙소에서 쓴 시를 직접 낭송해 눈길. 고은 시인은 ‘대동강 앞에서’라는 제목의 자작시에서 “무엇하러 여기 왔는가/ 잠못이룬 밤 지새우고…”라고 읊었다.
▼마라톤 정상회담▼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 간의 이날 2차 정상회담은 1차 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김위원장이 김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영빈관을 찾는 형식으로 오후 3시에 시작.
김대통령은 2시56분경 우리측 공식 수행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영빈관 1각 1층 ‘차 현관’ 앞 카펫 중앙에 들어섰으며 곧이어 현관문이 열리면서 김위원장이 들어서자 반갑게 악수.
이어 두 정상은 20여m 떨어진 복도를 따라 회담장으로 자리를 옮겨 잠시 환담을 나눈 뒤 남측의 임동원특별보좌역 등 3명, 북측의 김용순아태평화위위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단독 정상회담에 돌입. 정식 회담에 앞서 김위원장은 큰 목소리로 “오늘 일정이 아침부터 긴장되지 않았습니까”라고 안부를 묻고 김대통령은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등 잠시 공개리에 환담. 김위원장은 남측의 TV 방송을 본 얘기를 하면서 “남측 인민들도 다 환영하더라”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등 거침없는 태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정상회담을 시작한지 2시간이 넘어가자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위의 건의를 받아들여 45분간 정회, 휴식을 취하고 6시5분부터 회담을 재개해 6시 50분에 회담을 끝냈다.
두 정상은 중간 휴식에 들어가기 전 서울에서 행낭으로 전달된 신문들을 보며 잠시 환담. 김위원장은 “남측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군요”라고 관심을 표시한 뒤 옛 ‘서울신문’이 보이지 않자 “제호가 바뀌었다면서요”라고 언급하는 등 남한 신문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고 있음을 과시.
김대통령은 “대한매일로 바뀌었다”고 답변한 뒤 “이 신문철을 드리겠다”며 즉석에서 김위원장에게 신문들을 선물했고, 김위원장은 이를 수행원에게 전하며 “잘 챙기라”고 지시.
○…이날 단독 정상회담은 당초 김국방위원장의 집무실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갑자기 예의를 갖추겠다는 김위원장의 뜻에 따라 백화원영빈관으로 바뀌었다는 후문.
한편 김정일위원장은 간편복에 옅은색 선그래스 차림이었던 전날과 달리 이날은 중국 방문 때 입었던 것과 같은 회색 양복 스타일의 인민복에 김일성주석 뱃지를 달고, 색없는 안경을 끼는 등 외양상으로도 공식 정상회담이라는 것을 확인.
▼만수대 공식면담▼
○…김대통령은 앞서 오전 9시45분부터 만수대 의사당에서 북측 김영남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과 공식면담을 가졌다. 면담 시작과 함께 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건네던 김영남위원장은 “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더 가까워질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편안히 주무셨느냐”고 물은 뒤 김대통령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한시름 덜었다”고 말했다.
특히 양측이 서로 배석자들을 소개하는 도중 김대통령이 임동원특별보좌역을 소개하자 김상임위원장은 “말을 많이 들었다”며 친숙감을 표시.
김영남위원장은 이어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서로 갈라져 살아온 것은 전적으로 외세탓”이라며 ‘반외세 통일론’을 주장하는 등 북한의 기본 입장을 반복 설명한 뒤 김대통령에게 “국가보안법이 교류 협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예민한 문제를 불쑥 질문.
이에 김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의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논의중임을 지적한 뒤 “남북간에 많은 대화를 통해 이견이 있는 부분은 해소해나가야 한다”며 단계적인 의견 접근을 강조.
▼공연관람 및 옥류관 오찬▼
○…김대중대통령과 이희호여사는 김영남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과 공식면담이 끝난뒤 오전 11시 35분경 만경대 소년학생궁전에 도착, 학생소년 예술소조의 종합공연을 관람하고 오후 1시15분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2층으로 옮겨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오찬.
이날 옥류관 측은 김대통령을 위해 쇠고기 등을 3시간 이상 끓여 냉면육수를 만드는 등 정성을 다했다고 식당 접대원은 전했다. 냉면에 앞서 해삼과 족발찜, 꿩고기, 완자 등이 식탁에 올랐다.
▼이희호여사 및 수행원 움직임▼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14일 오전 평양시내 창광유치원과 수예연구소를 방문해 북한의 어린이, 여성들과 격의없는 정담을 나누고 오후에는 여성종합병원인 ‘평양산원’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며 산모들을 격려.
오후 3시55분경 평양시내 동평양지구 대동강구역 문수거리에 있는 ‘평양산원’에 도착한 이희호여사는 현관에서 김진수(64·여)원장으로부터 산원시설과 진료과목 등을 소개받고 “좋은 곳을 방문해 기쁘다”고 언급. 김원장은 “북쪽에서는 세쌍둥이 이상을 낳으면 애기 몸무게가 4㎏이 될 때까지 키워주고, 이후에도 미역과 포대 등을 공급해 준다”고 설명.
이희호여사는 이에 앞서 500여명의 수예사들이 일하고 있는 수예연구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방진실연구소장으로부터 북한의 자수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방소장도 한 번 남쪽에서 직접 염색과정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여사는 또 이날 오후 늦게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여원구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 북한 여성계 대표 7명과 남북여성단체 교류협력 강화와 종군위안부 문제 등을 주제로 40여분간 대화. 이 자리에는 남측에서 장상(張裳)이화여대총장 등이, 북측에서 여부의장과 천연옥여성연맹위원장 홍선옥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보상대책위원장 등이 참석했는데, 여원구부의장은 몽양 여운형선생의 셋째딸.
○…한편 이날 오후 인민문화궁전에선 이희호여사가 참석한 여성분야간담회 외에도 정당·사회단체와 경제분야 등 남북간 분야별 간담회가 다양하게 열렸다. 간담회에 앞서 우리측 수행원들은 조선컴퓨터회사를 방문했다.
▼평양 거리▼
○…김대중대통령이 14일 오전 수행원등과 함께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으로 이동하는 동안 인도의 시민과 학생들은 손을 흔들어 환영의 뜻을 표시. 일부는 두손을 맞잡아 머리위로 올리거나 자전거를 타고가다가 한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손을 흔들기도.
평양시민들의 이같은 적극적인 환영분위기는 김대통령의 방문 첫날인 13일 김정일위원장의 환대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때문으로 풀이됐다.
안내원들은 한결같이 “김대통령 등 남쪽 손님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시민들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
○…북측이 안전상의 이유로 남측 취재진이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제한해 평양시민의 아침 출근 모습을 직접 지켜볼 수는 없었다. 호텔 옥상에서 본 평양거리는 차량이 정체하는 교차로는 거의 없었는데, 안내원들은 “출퇴근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출근시간을 오전 8시부터 9시30분까지 다양하게 조정했다”고 설명.
<평양=공동취대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