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으로 통일 논의가 봇물 터지듯 번지면서 정치권에는 ‘통일을 모르면 차기를 얘기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통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이 정례화되면 차기 대통령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카운터 파트 역을 맡게 돼 통일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대통령 후보 감별의 핵심 요건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러다 보니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이후를 노리는 여야의 중량급 인사들은 저마다 앞다투어 통일 이론 공부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최근 마무리된 국회 상임위 배정 과정에서도 이런 ‘통일 열기’가 여실히 나타났다.
민주당의 경우 그동안 지원자가 없던 통일외교통상위가 일약 비(非)경제분야 최고 인기 상임위로 부상했다. 이 때문에 이 상임위를 지망했던 정대철(鄭大哲) 한화갑(韓和甲) 이인제(李仁濟)의원 등 거물들이 초재선 배려 및 대야 전투력 우선 고려 원칙에 따라 모두 국방위로 밀리는 기현상도 빚어졌다. 이들 중 일부는 통일외교통상위에서 탈락한 데 대해 총무단과 얼굴을 붉히며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한 사람으로 떠오르고 있는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은 이미 10여년 이상 통외통위만을 고집하고 있다. 실향민 2세대로 김대통령을 수행, 방북했던 정의원은 2월 “통일을 위해 당장 군축문제부터 논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동아일보’에 게재하는 등 오래 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일 분야에 대한 남다른 열의를 과시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총재경선에 출마한 김덕룡(金德龍) 손학규(孫鶴圭)의원이나 박관용(朴寬用) 서청원(徐淸源) 박근혜(朴槿惠)의원 등 중진들이 모두 통외통위에 몰려 있다.
국방위에 배정된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정상회담 이후 통일 공부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총재는 17일 청와대 영수회담에 참석하기 앞서 김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을 여러 차례 숙독하는 등 남북정상회담 후 부쩍 통일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북한도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대해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을 수행한 한 인사는 “북측 여러 관계자들로부터 ‘다음 대선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북측도 김대통령 이후의 문제에 관심이 커 내심 놀랐다”고 말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