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칼럼]남북經協, 기초부터 다지자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40분


우리가 흔히 사회 간접자본이라 부르는 항만·도로·통신 시설 등은 모든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는 외부경제(externalities)를 제공한다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이러한 외부 경제의 공급이 불충분한 경제체제의 전반적인 생산성과 효율이 낮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남·북한 경제협력의 첫 단계로 남한기업을 포함한 외부기업들이 북한에 들어가 수지맞는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수준의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잘 훈련되고 규율있는 많은 근로자들을 낮은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미흡한 사회간접자본 축적에 따른 경제전반에 걸친 비효율성이 팽배한다면 외부기업이 그곳으로 몰려갈리 없는 것 아닌가. 거꾸로 임금수준이 높은 미국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직접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외부경제의 공급이 풍부한 곳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진심으로 외부와의 경제협력을 통한 경제개발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사회간접자본 시설 투자를 위한 청사진과 구체적인 재원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해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 등과 같은 국제기구를 적극 활용하려면 우선 남한당국과의 긴밀한 협력방안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물질적인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한 노력과 함께 추진되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비물질적인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 형성기반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일찍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바있는 미국의 케네스 애로 교수는 오늘날 통념적으로 사회적 자본으로 불리는 상호 신뢰(trust), 즉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가 제공하는 외부경제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즉 애로교수는 신뢰란 사회적 가치를 모든 경제활동에 수반되는 거래비용을 줄여주는 경제체제의 윤활유와 같다고 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신뢰 혹은 사회적 자본형성이 단기간내에 이루어질 수 없는데에 있다. 사회적 자본의 형성은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확충보다 더 오랜시간을 소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회적자본 형성을 위한 꾸준하고 인내심있는 노력과 함께, 우선 상호 신뢰를 증진시켜나갈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남북간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 그리고 재산권보호협정 등의 체결과 이들 협정을 적극적으로 준수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재 미흡한 사회적 자본의 기능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적 자본 자체의 형성과 축적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적 자본은 역회전을 어렵게하는 장치가 있는 톱니바퀴와 같아서, 한쪽 방향으로만 쉽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즉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자본을 형성하는 일보다, 기존의 사회적 자본마저 정부에 의해 흐트러져 버리기가 훨씬 쉽다 는 신뢰 의 저자인 프랜시스 후꾸야마 교수의 충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마치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친 양치기 소년에게 속아본 동네사람들이 진정 늑대를 만나 소리친 소년의 소리에 쉽사리 귀를 기울이지 않을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이것은 남·북한 경제협력의 활성화를 위한 기초를 튼튼히 다지기 전에 너무 조급하게 서두는 일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를 갖고 올 수 있다는 점도 함축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과 경영기법 그리고 세계적 판매망을 가진 기업들이 국경을 외면하고 넘다드는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세계각국은 이러한 세계화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심한 경쟁을 벌리고 있다. 즉 정보고속 도로망을 포함한 정보화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은 물론이려니와, 일관성있고 예측 가능한 정부시책과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제도적 기반의 마련 등 각종 외부기업 유인책을 경쟁적으로 펴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 정책당국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끝으로 한번 더 강조하지만 북한이, 이러한 세계화시대에 외부와의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길 원한다면 경제협력의 기초를 다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좀더 긴 안목의 남·북한 경제협력도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사공 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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