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이 언론 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기자와 언론사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잇따라 내고 있다. 소송결과는 검사들의 전승(全勝). 배상금액도 수천만∼억원대에 이르고 있다.
검찰은 공권력의 실체라는 점에서 많은 법조인과 언론계 인사들은 언론과 검찰이 서로를 견제하며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론의 사려깊지 못한 보도와 검찰의 법적 대응이 반복된다면 공권력의 권위와 언론자유가 크게 훼손 또는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연이어 검사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공익차원의 보도활동에 의해 침해받은 공인(공무원)의 명예를 어디까지 인정하는게 바람직한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검사들, ‘승률 100%’〓지난해 3월 이후 검사들이 언론보도를 문제삼아 제기한 소송은 모두 5건. 검사들은 이 5건의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다. 손해배상 금액도 3000만∼2억2000만원에 이르는 거액이다. 명예훼손 시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사설도 문제가 돼 조선일보가 패소했다.
▽검사 ‘집단’도 명예훼손의 주체인가〓이들 사건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남부지청 검사와 MBC간의 강제조정 결정. 이 사건의 쟁점은 검사 ‘집단’이 소송을 낼 자격, 다시 말해 명예훼손의 주체(피해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명예훼손의 법리는 피해자가 특정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남부지청 검사들은 MBC의 보도가 자신들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검사 ‘전체’를 매도함으로써 자신들 개개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문화방송의 배상을 결정함으로써 사실상 검사 ‘집단’의 원고 적격(適格)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사실상 불특정 다수에 대한 명예훼손의 성립을 인정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형태(金亨泰)변호사도 “미국 판례는 특정 집단에 대한 비난보도의 경우 이 집단이 30명 이상만 돼도 특정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확립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변호사는 “‘하와이 사람은 모두 바보’라면 불특정 다수에 대한 비난이겠지만 ‘수사검사 전체’라고 하면 ‘특정 다수’여서 명예훼손의 주체가 된다”고 말했다.
▽‘입증된 의혹’과 ‘국민의 알 권리’〓법조계와 언론계에서는 이같은 판결 결과에 대해 논란이 많다. 당사자인 검사들과 일부 법조인들은 “사실여부에 대한 엄격한 검증없이 과장 왜곡보도를 일삼아온 언론에 대한 사법적 견제”라며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언론 검열 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라며 우려를 나타내는 견해도 많다.
차병직(車炳直)변호사는 “명예보호의 범위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잡는 판례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축시키고 나아가 권력기관에 대한 언론의 감시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태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공인에 대해서는 언론사에 사실적 악의가 있었음을 원고측이 입증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처럼 검사 비리의 경우 수사주체가 검찰이므로 우선 검찰이 사실을 밝혀야 하는데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거꾸로 소송을 냄으로써 자신들의 의무를 언론사에 덧씌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상운(安相云)변호사는 “국가권력의 비리를 파헤친다고 하면서 사실확인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상대방이 국가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입증이 안된 내용을 과장 왜곡보도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고 말했다.
▽미국의 판례와 이론〓명예훼손의 법리를 확립한 판례로 대표적인 것이 1964년의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이 사건은 뉴욕타임스가 1960년 3월29일자 신문에 미국 남부 흑인에 대한 탄압에 항의하고 민권운동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광고를 게재한 것에 대해 앨라배마주 경찰국의 설리반 감독관이 ‘경찰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낸 것이다.
이 사건에서 앨라배마주의 주법원과 연방법원은 명예훼손의 성립을 인정하고 50만달러의 배상을 명령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공인(公人)의 공적 행위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해당 보도가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에 의해, 즉 그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알거나 허위인지에 대해 무분별하게 무시하고 보도했다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공인에 관한 이같은 ‘거의 절대적인’ 언론의 자유는 이후 미국의 여러 판결에서 확인됐다.
<이수형·신석호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