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의 대북정책을 ‘환상적인 유화정책’이라고 평가했던 이총재의 보수기조는 이날 연설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총재는 회담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미국의 레이건 전대통령이 소련과 군축회담을 벌이면서 한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말을 인용했다. 남북관계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고, 상호주의 원칙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총재가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협의하기 위해 국회 내에 남북관계특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 것도 이같은 입장에서 나왔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바라보는 시각도 작년과 비슷했다. 지난해 10월 “관치경제로 대우사태와 투신사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날 “졸속 구조조정이 이뤄졌으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맥을 같이 하는 것.
다만 지난해의 경우 국가부채의 심각성을 중점 제기한 반면 이날 연설에서는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공적자금을 적기에 추가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비판 강도가 가장 높았던 분야는 역시 국내 정치. 이총재는 “4·13총선을 총체적 부정선거”로 규정하면서 국정조사권 발동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총재의 연설에 대해 민주당측은 “남북정상회담에 딴죽거는 것을 제외하고는 달라진 점이 없다”며 ‘인색한 점수’를 주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李총재 대표연설 요지▼
시대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구태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한 쪽에서 상생(相生)의 정치를 부르짖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상극(相剋)의 정치를 복원하려 한다.
양당 구도와 여소야대의 선택은 바로 국민의 뜻이었다. 그러나 이 정권은 수와 힘을 빌려 자신들만의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4·24’ 영수회담의 정신으로 돌아오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국민을 위한 길이라면 언제든지 김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용의가 있다.
‘4·13’ 선거는 관권 금권 흑색선전이 판을 친 선거였다. 우리는 국정조사를 통해 부정선거와 편파수사의 진상을 조사하고 국민에게 알릴 것이다. 검찰의 편파수사가 계속되면 특별검사제를 도입, 전면 재수사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 야당도 필요한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기본합의서에 따른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하루속히 가동시켜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자 수를 10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든 민간의 대북 진출이든 그 상세한 내용을 파악해 국회에 보고해야 하며 대북지원 재원은 투명한 법적 절차에 따라 확보 집행돼야 한다.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를 협의하기 위해 국회내에 남북관계특별위원회(가칭)의 구성을 제안한다.
10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쏟아 붓고도 금융구조조정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공적자금의 사용 정보와 계획을 수록한 ‘공적자금백서’를 매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공적자금에 관한 국정조사’도 검토하겠다.
‘관치금융청산특별조치법’을 제정해 관치금융 해소 노력이 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불안한 상황에서 2001년 예금자보호한도 시행은 큰 혼란을 낳을 수 있는 만큼 관치금융이 청산되고 금융이 정상화될 때까지 연기되어야 한다.
노동계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은 자제되어야 한다. 최근 사태에 대해 모든 책임자를 철저히 조사해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을 요구한다.
<송인수기자> 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