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정치적인 ‘포기’결정은 △96년 목포지구당 포기 △97년 ‘정부직 진출 포기선언’ △‘4·13’ 총선 불출마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정치적 입지는 포기선언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강화돼 왔다.
그의 결정이 김대중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김대통령과의 신뢰의 끈은 그만큼 더 튼튼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불출마 선언은 당에서의 그의 역할과 비중을 반증해준 셈이다.
그가 8월 전당대회 경선 출마의사를 시사하면서 그와 한화갑(韓和甲)의원, 이인제(李仁濟)상임고문과의 3자 연대 움직임이 구체화되자 당내에서는 ‘불공정 경선’이라는 등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 다른 후보들의 경우 전체 대의원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동교동 연대에 끼지 못하면 당선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다 동교동계 주자인 한화갑의원과의 내부갈등설, 서영훈(徐英勳)대표의 적십자사 총재 이적설 소동, 선거법 위반수사를 받고 있는 장성민(張誠珉)의원의 ‘동교동계 음모론’ 제기 등이 불거지자 그는 결국 최고위원 출마의사를 접었다.
당초 권고문의 출마 결정에 일조했던 청와대 핵심관계자들도 당내 잡음이 끊이지 않자 금주 들어 권고문에게 불출마를 권유하는 쪽으로 선회했고 결국 권고문은 4일 김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불출마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는 후문.
권고문은 불출마 선언 후 ‘경선 중립’ 입장을 밝혔지만 그의 불출마 자체가 경선판도에 변화를 초래할 전망이다. 우선 이인제고문의 경우 행보가 자유로워진 권고문측의 본격적인 ‘물밑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됐고 범동교동계인 박상천(朴相千)의원도 권고문의 불출마에 따른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권고문은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는 벌써 “경선에서 한발 물러섬으로써 더 큰 힘을 갖고 당내갈등을 조정하는 ‘울타리’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