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은 민주당 송석찬(宋錫贊)의원과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의원이 제기했다. 민주당 문희상(文喜相)의원은 질문서에는 포함시켰으나 청와대측의 만류로 실제 발언 때는 뺐다.
이들의 개헌론 제기로 김대중(金大中)정부 출범이후 자민련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내각제 개헌’ 논의가 ‘대통령 중임제’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대통령 중임제 주장은 ‘4·13’총선후 여야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제기됐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4월 대통령 중임제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고, 민주당 이인제(李仁濟)고문이 ‘4년 중임제 및 정부통령제’의 도입을 주장했다. 여기에다 내각제론자였던 이한동(李漢東)총리마저 “내각제 개헌이 되지 않는다면 미국식 부통령제를 곁들인 4년 중임제 개헌을 심각히 얘기해 봐야 한다”고 가세했다.
이들 의원은 이날 중임제 개헌 및 부통령제 도입 필요성의 근거로 △지역주의 폐해 극복 △권력분산 및 책임정치 구현 △대통령의 레임덕 방지 등을 꼽았다.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극한적 투쟁을 벌여야 하는 ‘5년 단임제’는 동서 지역간의 골을 더욱 깊이 파이게 했기 때문에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개헌론자들이 내세우는 공통된 명분이다. 단임제 하에서는 대통령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레임덕’ 현상이 빨리 와 국정혼란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논리도 덧붙인다.
그러나 이같은 개헌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여야간에 개헌론을 보는 시각과 이해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지금 개헌논의가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터져나올 경우 김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약화시켜 집권 후반기의 개혁과 국정 마무리에 차질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중임제 개헌론은 그동안 수면으로 들어갔던 자민련의 내각제 주장을 다시 촉발할 수도 있다.
청와대가 이날 문희상의원의 개헌론 발언을 만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 박병석(朴炳錫)대변인도 “몇몇 의원들의 주장은 당론과는 무관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한나라당 사정도 단순하지는 않다. 이총재는 중임제에는 찬성하지만 민주당 이인제고문이나 한나라당 김덕룡의원, 이한동총리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정부통령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이총재를 제외한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유권자가 가장 많은 영남권과 거리가 있다는 점.
이 때문에 개헌론은 당분간 수면 아래에서 잠복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김대통령의 임기가 후반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정국상황과 맞물리면서 추후 언제든지 다시 돌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보편적인 전망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청와대 "레임덕 자초" 거론 제동▼
청와대가 11일 민주당의원들의 개헌론 제기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판단에서다. 지금 개헌론이 점화될 경우 각종 개혁정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궁진(南宮鎭)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지금은 개헌논의가 아니라 금융개혁과 의약분업 등 개혁정책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특히 전례에 비춰볼 때 여당에서의 섣부른 개헌론 제기는 언제나 ‘집권연장 음모’ 주장을 낳아 소모적인 논쟁만 양산했다는 점도 감안한 것 같다. 또 조기 ‘레임덕’현상을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개헌론의 내용에 대해서도 4년중임제와 정부통령제가 현 제도보다 반드시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고위관계자는 “4년중임제의 경우 전임 4년은 개혁보다는 재선을 위한 선심정책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고 정부통령제도 지역감정을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 일각에서도 정권 재창출과 헌정질서의 안정을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든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긴 하다. 그 기저(基底)에는 자민련과의 합의사항인 내각제 개헌에 대한 희망도 깔려 있다. 그러나 아직은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 전반적인 기류다.
<최영묵기자>y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