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는 영원한 적이 없다〓정가에서는 그동안 적대적이었던 두 사람의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총선 이후 한나라당은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반대 등 ‘자민련 고사(枯死)작전’으로 나갔고, 자민련은 이에 맞서 DJP 공조를 사실상 복원해 ‘비(非)한나라당 연대’ 노선을 견지해 왔기 때문.
실제로 JP는 회동에서 “정치에는 영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 JP는 회동 후에도 “필요하다면 이총재와 식사도 하겠다. 오늘은 시작일 뿐이다”고 말해 향후 이총재와의 관계개선에 나서겠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았다.
이총재도 회동 후 “그동안 정치선배이자 고향(충남)선배인 김명예총재와 적조해서 골프를 한 수 배우려 했다”고 말하는 등 JP를 깍듯이 예우했다.
▽18홀과 ‘18석’〓당초 18홀을 라운딩할 예정이었던 이날 ‘골프장 회동’에서 화두는 ‘18’이라는 숫자. 기자들도 회동 후 “현재 20석인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18석으로 완화하는 문제가 논의됐느냐”고 집중적으로 질문.
이에 대해 양당 배석자들도 “‘18’이란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한나라당 권철현대변인은 “오찬 도중 자민련 김종호(金宗鎬)총재권한대행이 자리를 비켜주자고 몇 번 얘기했으나 두 분만 남겨놓게 되면 나중에 온갖 억측이 나올 것 같아 당초 골프를 함께 치기로 했던 박희태(朴熺太)부총재와 김대행 외에도 우리 당에서 주진우(朱鎭旴)총재비서실장과 나까지 줄곧 자리를 함께 했다”고 설명했다.
JP도 회동 후 기자들에게 “국회법 개정문제는 일절 없었다. 잘못 보도되면 오해를 사니까 상상해서 맘대로 쓰면 절대 안된다”고 말했고 이총재도 “정치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김명예총재는 “내가 (이달말) 일본에 다녀와서 골프회동 약속이 다시 잡히면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라고 여운을 남기기도.
▽무산된 골프 라운딩, 아쉬운 자민련〓자민련은 “두 분이 골프라운딩을 함께 했으면 단둘이 속깊은 얘기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운 표정이 역력. 회동 후 김대행은 다음날 골프약속을 다시 잡자고 제의했으나 이총재는 “선약이 있다”며 정중히 거절.
특히 이총재는 이날 폭우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두 사람이 골프장에 와 있는 모습이 TV에 비춰지는 게 신경이 쓰이는 듯 아예 양복을 입은 채 골프장에 도착. 그러나 JP가 골프복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가 오찬 후에는 원래 양복으로 다시 갈아입고 카메라 앞에 서기도.
▽신경쓰이는 민주당〓민주당은 두 사람이 만난다는 사실조차 자민련측이 통보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해하는 표정이 역력. 그러나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자민련이 잘되는 게 최상의 목표인 만큼 24일까지 국회법을 운영위에 상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
또 다른 관계자는두 사람의 회동에 대해 “자민련의 민주당 압박목적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한나라당과 자민련과의 관계가 쉽게 풀어지겠느냐”고 하면서도 상당히 신경쓰이는 모습.
▼"낭만적 對北觀 경계" 맞장구▼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가 22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의 오찬에서 ‘낭만적 대북관’을 경계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이 전했다.
먼저 이총재는 일본 산케이신문의 최근 보도를 인용하며 “영국 체임벌린 총리가 2차대전 발발 직전 뮌헨회담에서 히틀러를 만나고 귀국해 ‘평화가 시작됐다. 이제 전쟁은 없다’고 선언한 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당시 현실주의자였던 처칠은 ‘비극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JP도 “72년 7·4 남북공동성명 당시에도 곧 평화가 올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나는 합의사항이 한 장의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음을 지적했었다. 차분하게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이총재의 지적에 공감을 표시했다는 것.
<공종식기자>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