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혈육생존 확인 南가족들]"살아있어줘 고마워"

  • 입력 2000년 7월 27일 23시 37분


북에 배우자와 자식을 남겨두고 각각 월남, 결합한 부부가 27일 북쪽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은 이선행(80·서울 중랑구 망우2동), 이송자씨(81·여) 부부. 남편 이씨는 전 부인 홍경옥씨(76)와 아들 진일씨(56) 등의 생존을 확인했고 부인 이씨도 첫째아들 박의식씨(61)가 살아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확인한 반면 둘째아들 산웅씨의 사망 소식도 함께 접했다.

평북 박천 출신인 남편 이씨는 50년 11월 중공군이 남하하면서 피란길에 나섰으나 대동강 다리가 폭파되는 바람에 가족과 헤어졌다. 함남 문천이 고향인 부인 이씨는 47년 먼저 월남했던 남편을 찾아 내려왔으나 찾지 못하고 결국 곧 돌아갈 줄 알고 남겨두고 온 자식들과 영영 이별했다.

68년 이선행씨는 친구 소개로 부인 이씨를 만나 “애 버리고 나온 홀아비와 과부끼리 의지해 살자”며 재혼했다. 재혼 이후 둘 사이에 자식은 없다. 언젠가 자식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과 부인이 열심히 일해 지금 살고 있는 단독주택 외에 43평짜리 아파트 한채도 마련해뒀다.

남편 이씨는 “자식을 두고 온 죄책감에 우리 부부가 구덩이를 파고 함께 죽어버리자는 생각도 해봤다”며 가슴에 쌓인 한을 털어놨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막내딸 생존확인 노범석씨▼

27일 북의 가족 소식을 접한 노범석씨(76·서울 광진구 구의동)는 말을 잇지 못했다.

1·4후퇴 때 고향 땅에 두고 온 막내딸 순복씨(52)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잠깐. 천신만고 끝에 지난해 3월 편지를 보내온 큰딸 순덕씨는 그 사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버지를 그리는 동안 저는 소녀의 몸에서 8남매를 둔 할머니가 됐네요.”(순덕씨 편지에서)

순덕씨는 편지에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심정을 절절히 남겼지만 편지는 직접 쓰지 못했다.

“순덕이가 나와 헤어지고 난 뒤 남의 집을 전전하는 바람에 학교를 못다녔다는 거예요. 못난 아비 때문에 일생을 고생만 했다는데….”

함남 회산에서 해방전 면사무소 서기로 일하다 월남한 뒤 노씨는 1남5녀를 두고 새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경찰과 병원직원으로 일하는 50년 세월 동안 두고 온 혈육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노씨는 이날 집으로 걸려온 친지들의 축하전화를 받으면서도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새벽녘 네 살, 두 살배기 두 딸에게 ‘곧 돌아오마’며 산마루에서 헤어지던 순간이 생생해요. 아이들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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