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이날 초선의원 3명이 당 지도부의 비상대기령에도 불구하고 외유에 나서 국회 의결정족수에 미달되는 사태에 이르자 오후 늦게 의원총회를 열어 당분간 냉각기를 갖고20일경 국회를 다시 열기로 했다.
한나라당의 국회 개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4일까지는 추경예산안과 정부조직법 등 ‘민생현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던 오전까지의 ‘기세’가 무색해진 셈이다.
이날 민주당 강운태(姜雲太) 이강래(李康來) 정범구(鄭範九)의원 등 3명은 “약사법이 통과된 현실에서 야당의 극한 반대 속에 더 이상 여당만의 단독국회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과 현실적으로도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상황 인식을 갖게 됐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오후 4시50분 비행기편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정균환(鄭均桓)총무 등 지도부가 급히 이들을 불러 만류했으나 막무가내였다는 후문이다.
이들의 미국 방문은 미 국무부 초청에 따른 것으로 체류 일정은 3주. 이에 앞서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吳世勳)의원 등 4명도 지난달 29일 같은 케이스로 출국한 바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은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이 스위스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오전 출국한데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와 조부영(趙富英)의원은 일본을, 강창희(姜昌熙)의원은 동티모르를 방문중이어서 의사진행에 필요한 과반의석(137석)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소속의원 3명이 출국함으로써 국내에 남아 있는 ‘비한나라당 연대’ 의원들의 총수는 과반에 3석 미달하게 됐다. 설혹 과반이 된다고 해도 국회법 날치기 무효화를 요구하며 의사 진행을 저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날 정부조직법 심의를 위해 소집된 행자위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점거한 뒤 출입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민주당측은 회의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오후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는 당이 처한 무기력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의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게 돼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한나라 "우리가 이겼다" 축제 분위기▼
“이제는 드디어 휴가를 갈 수 있게 됐다.”
2일 오후 강운태(姜雲太) 정범구(鄭範九) 이강래(李康來)의원 등 민주당 의원 3명의 출국으로 자민련과 민주당에 의한 단독국회 강행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나라당은 일순간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당의 한 관계자는 “운영위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날치기됐을 때에는 밀리기도 했지만 이제 우리 당이 ‘작은 승리’를 거둔 셈”이라고 말했다.
이날 민주당과 자민련의 단독 국회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에 남아있던 70여명의 의원들도 악수를 나누며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한나라당 원내총무실은 여권의 단독국회에 대응하기 위해 1일 외유중인 소속 의원들에게 내렸던 ‘복귀 명령’을 발빠르게 해제했다. 다른 의원들도 그동안 국회에서 무작정 대기해야 했던 상황으로 인해 무한정 미뤄놓았던 지역구 일정을 다시 짜는 등 활기가 되살아난 듯한표정이었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민주당이 국민을 상대로 쇼를 벌이려다가 내분으로 그나마 실패했다”면서 “출국한 3명의 민주당 의원은 성명을 통해 단독국회의 부당성까지 지적했다”고 민주당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그러나 국정을 함께 책임져야 할 야당으로서 한나라당이 대치정국에서 ‘승리’를 거둔 데 대해 무작정 좋아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이같은 한나라당의 태도에 대해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 의원은 “그동안 민주당은 사과의사 표명 등 여러 가지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한나라당은 그 때마다 초강수로 나왔다”며 “야당이 민생법안 처리가 무산된 것을 기뻐해서야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