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묵씨의 아버지는 1909년 9월 ‘민적법’에 따라 호적을 만들면서 세묵씨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제 하에서 남은 가족들이 고통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광복을 맞은 뒤 91년이 돼서야 세묵씨는 ‘건국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판석씨 등 유족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세묵씨의 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호적을 만들려고 했지만 호적에 관한 예규집인 대법원의 ‘호적선례요지집’은 ‘이미 사망한 무적자는 취적(就籍)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전사자인 송기호(宋基號)씨 유족도 마찬가지의 경우. 전쟁 전 월남한 송씨는 남한에서 ‘가호적’을 만들 사이도 없이 참전해 51년 전사했다. 뒤따라 월남한 송씨의 딸(60)은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의붓아버지의 호적에 이름을 올린 채 살아왔다. 98년에야 국방부에서 아버지의 ‘전사확인서’를 받은 딸은 아버지의 호적을 만들어 국가유공자 가족으로 인정받으려 했으나 역시 같은 법적 문제에 부닥치게 됐다.
다행히 두 유족은 98년 전주지법과 서울가정법원에서 숙부와 아버지의 호적을 만들 수 있었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법원이 예규와 관계없이 취적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오랜 법원 근무경력을 바탕으로 두 유족을 자문했던 행정사 김상곤(金相坤·69)씨는 99년부터 ‘호적 없는 독립유공자와 국가유공자 취적 특례법’ 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두 유족과 같은 경우 국가에서 독립유공자나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즉시 유족이 죽은 사람의 호적을 만들 수 있도록 특별법을 만들자는 것.
김씨는 올 3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특별법 제정을 탄원했고 법무부는 5월 “충분한 검토를 거쳐 반영여부를 참고하겠다”는 회신을 보내온 상태다. 김씨는 “최근 실향민의 호적문제가 대두되고 있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유공자와 유족의 호적문제가 더 시급하다”며 “육군이 진행중인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 성과를 거두면 곧바로 전몰군인의 취적문제가 대두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