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남북한에 '통일문학'이 온다

  • 입력 2000년 8월 8일 18시 33분


《며칠 앞으로 다가온 남북이산가족상봉. 반세기가 넘은 냉전의식이 급격히 와해되면서 시대 변화에 예민한 촉수를 들이댄 작품이 남과 북 양쪽에서 시도되고 있다. 분단이 낳은 이질성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춘 ‘통일 문학’이 첫걸음을 내딛는 셈이다.》

지난해 계간지 ‘라쁠륨’ 가을호에 발표된 중견작가 이호철의 단편 ‘이산타령, 친족타령’은 근작 중 독특한 돋을새김을 이룬다. 해방 직후 아이를 데리고 북한으로 사라진 이웃 과수댁을 증오하던 부부가 30여년만에 북한을 찾아간다는 이야기. 그간 아들과 생이별한 뒤 온갖 험한 소리를 퍼붓던 부부는 정작 늙은 과수댁을 만나자 부둥켜 안고 울기만 한다. 이산의 연원을 꼬치꼬치 따지는 것은 ‘설익은 치졸함이고, 촌스러움’이다.

시 분야에서는 이산과 통일을 주제로 한 작품이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출간되는 이선관의 시집 ‘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실천문학)가 그 성과로 꼽힐만하다. “여보야/ 이불 같이 덮자/ 춥다/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따뜻한 솜이불처럼/ 왔으면 좋겠다.”(‘만약 통일이 온다면’) 시적 형상화의 완성도는 부족하지만 분단과 이산의 애틋한 아픔에 젖줄을 대고 있다는 점에서 울림의 진폭이 작지 않다.

북한 문단에서도 최근까지 ‘조국통일 주제의 작품’이 조심스럽게 시도되고 있다. 월남한 조류학자가 북녘 가족에게 새를 통해 교신을 보낸 실화를 소재로 했다 하여 익히 알려진 림종상의 단편 ‘쇠찌르레기’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입에 오른다. 하지만 통일 작품 대개가 이데올로기 찌꺼기가 바닥에 깔려 있어 완성도나 공감도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평론가 김재용씨는 “1990년대 초반을 전후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린 소설이 대거 발표되었다가 보수파에 의해 심한 반발을 샀던 점을 고려하면 근자의 통일 관련 문학의 등장은 의미있는 변화”라고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시 부분에서는 남북 화해와 통합의 열망을 민족문화적인 개념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이 90년대 말부터 정치색 짙은 시편과 구별되는 문학적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홍용희씨는 10일 발간될 계간지 ‘21세기 문학’을 통해 북한시 경향을 일별하면서 “90년대말부터 두드러진 이산가족의 혈육에 대한 그리움, 통일의 열망을 담은 시편은 남한 사람들에게도 정서적 감응력과 친화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통일문학의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전쟁 미체험 세대가 주도하는 ‘통일문학’은 아직 맹아단계다. 이들이 물려받은 ‘분단’(分斷)과 ‘이산’(離散)의 문학적 체험도 풍성하지 못한 편이다. 이들이 참전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면 4·19혁명의 영향을 받아 ‘소외’라는 실존적 문제를 제기한 최인훈의 ‘광장’이 거의 유일하다.

1970년대 들어 6·25전쟁을 유년기에 체험한 세대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청준의 ‘소문의 벽’ ‘흰옷’, 황석영의 ‘한씨 연대기’, 홍성원의 ‘남과 북’, 이호철의 ‘남녘 사람 북녘 사람’,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등이 이에 해당된다. 1980년대에는 이문열의 ‘영웅시대’ ‘변경’ ‘아우와의 만남’과 조정래의 ‘태백산맥’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분단의 상흔과 실향민의 아픔이 순도높은 문학적 상징과 만날 기회가 흔치 않았다. 탈 냉전으로 거대담론이 무너지는 시기에 문단의 중심을 차지한 전쟁 미체험 세대 작가에게 분단의 상흔이란 ‘옛날 이야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오세영 단편 '쇠가죽 쌈지' 만화부문선 거의 유일

만화 부문에서는 사실주의적 그림으로 유명한 오세영씨(45)의 단편작인 ‘낡은 쇠가죽 쌈지 속의 비밀’(89년)가 거의 유일하다.

북에 두고온 부모의 유품과 묘지의 위치도 그리고 땅문서가 든 쌈지를 소중하게 간직한채 북녘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 그리고 두 사람의 갈등을 안타깝게 여기는 아들 등 3부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이 작품은 이산 가족의 실상을 빗대 분단에 대한 세대별 시각차를 드러낸다.

오씨는 “이산 1세대나 2세대는 분단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갇힌 세대”라며 “분단의 상흔을 궁극적으로 치유할 세대는 ‘쇠가죽 쌈지’의 아들과 같은 세대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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