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南 90세老母, 北아들 생존확인 사흘뒤 숨져

  • 입력 2000년 8월 10일 00시 16분


"오빠가 엄마 돌아가신 것을 모르고 내려올텐데….”

8월15일 북한에서 내려올 아들을 만나기로 돼 있던 90세 할머니가 상봉을 20여일 앞두고 숨져 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강원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 황봉순 할머니(90)는 지난달 16일 북한에서 통보된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큰아들 문병칠씨(69)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흥분 속에서 지내다 사흘만인 19일 숨졌다.

황할머니는 아들의 생존 소식을 듣고 치매 환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다. 숨지기 하루 전에도 아들이 내려온다는 신문을 펴놓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나 사흘 뒤 황할머니는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며 손을 내저은 뒤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황할머니의 딸 문정자(文正子·57)씨는 “어머니는 올해 초부터 어쩐 일인지 큰 오빠 얘기를 많이 하셨다”면서 “그러다가 오빠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황할머니는 1950년 18세였던 아들 문씨가 의용군으로 징집된 뒤 50년 동안 생존 여부조차 모른 채 살아왔다. 아들 딸 각 2명이 남한에 있었지만 둘째 아들은 96년 숨졌다.

문씨는 “오빠가 죽은 줄 알고 절에 위패를 모셔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며 “어머니가 조금만 더 사셨어도 오빠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씨는 또 “여건이 된다면 어머니 위패를 모셔 놓고 오빠와 함께 제사라도 지내 이승에서 만나지 못한 모자(母子)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성〓최창순기자>cs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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