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작전상의 이유로 모조리 베어지고 훼손되어졌던 숲은 세월따라 다시금 울창해지고 지뢰밭에서는 풀과 꽃이 자라 피어나고 시들며 씨앗을 퍼뜨리고, 온갖 동물들과 곤충, 물고기는 제 살아오던 대로 목숨껏 생을 구가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일찍이 비무장지대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온, 그래서 DMZ에 대한 상세한 저서를 낸 바 있는 함광복씨의 표현에 의하면 그날 이후 재현되어본 적이 없는 그 마을의 말과 풍습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문화의 무덤’이며 ‘현대사적 유적이자 자연사적 문화유산’이다. ‘태고의 비밀’이나 ‘전인미답의 비경’이 숨어있으리라는 것은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환상이고 과장일 것이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비무장지대는 분단과 전쟁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기형적 삶의 상징이고 상처이다. 그래서 강원 인제군 서화면 소양강 상류의 DMZ와 민통선 사이에 조성되는 ‘평화생명마을’은 닫힌 것은 열고 막힌 것은 흐르게 하는, 회복과 상생의 의미를 가지며 평화와 생명에 대한 희망과 상상력의 구체적 실현이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사람과 자연과의 화해와 화합, 그리고 모든 생명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을 기치로 삼아 ‘평화와 생명’으로 뜻매김하는 이 마을은 나라 안팎의,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회원이 돼 1달러 혹은 10달러의 작은 정성으로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자연생태공원, 생명마을, 평화공원으로 이뤄질 것이다. 033―253―2012
무릇 모든 좋은 일들이 그러하듯, 시작은 비록 미미하나 이름은 훌륭하고 장대하리라는 믿음은, 희망을 갖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특권이자 약속인 것이다.
오정희(작가·‘평화생명마을’ 준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