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백기완/또 못 갑니다 어머니!

  • 입력 2000년 8월 13일 14시 53분


어머니! 아직 살아 계시지요? 저 기완이에요. 어머니께서는 노상 홑것으로 지내시면서도 저한테만은 아기 버선을 곱게 지어주시면 엉뚱하게도 눈 언덕을 마구 달려 망쳐놓던 뜨저구니(말썽꾸러기) 기완이에요. 저녁거리가 없는데도 둘러친 떡 개범벅을 해내라고 밤새 앙앙대 어머니의 허기진 옷깃을 적시던 못된 기완이라니깐요.

그렇게 타고난 불효 때문인지 55년 동안 소식 한번 못 전한 통분의 세월. 올해로 어머니께서 102살이시니 어언 인간 수명의 한계를 넘으셨지만 저는 지금껏 살아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축구선수가 소원인 저를 맨발로 떠나보내시던 날 기완아, 모래를 짜먹는 한이 있어도 결코 가난엔 꿇지 말거라 고 하셨지요. 그 분부대로 굳세게 살아왔지만 어머니, 저는 성공은 못했습니다. 대신 우리들의 만남을 가로막는 외세와 그 앞잡이를 보는 대로 내지르는 단세포, 통일 하나밖에 모르는 오돌쇠가 되어 도통 세속의 키가 안 컸습니다.

어머니, 얼마 전 남북의 높은네들이 만나는 장면을 보셨나요. 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만났다는 그 엄청난 충격에 울고, 그 위에 겹치는 어머니 영상에 쓰러져 울고, 언뜻 정신을 차려보니 뎅그렁 나뒹구는 눈물 젖은 쐬주병, 남은 한잔에 어리는 제 허상을 물어 뜯으며 울었습니다.

역시 힘과 힘은 만나도 이 오돌쇠의 한으로는 안 되는구나. 남들은 저렇게 한판 벌리는데 한살매(한평생) 통일운동을 했다는 이 못난이는 어머니께 콩나물국 한 그릇 대접못하는구나 하는 자책에 부들부들 두 주먹을 떨다가 문득 눈이 열리며 민족문제를 빙자한 얏싸한 통치조작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저도 어머니 곁으로 안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년 가을 어느 방송국에서 중국을 거쳐 북쪽을 갔다오자고 했을 때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살매를 내나라 내땅은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야 한다며 싸워 왔소. 아무리 사무쳐도 그 길을 저버릴 수가 없으니 제발 판문점으로 좀 가게 해주시오. 또 내가 베이징(北京)을 거쳐 가게 되면 어머니가 종아리를 치시며 내쫓을 겁니다. 네 이놈, 분단을 거머쥔 외세와 그 앞잡이들을 몽창 몰아내고 와야지, 그래 그들이 무서워 남의 땅을 거쳐왔단 말이더냐. 당장 물러가거라, 이놈! 그러실 터인 즉 제발 날 불효자로 만들지 말아달라 고 했더니 방송국에서 주선하는 것이라서 어렵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때의 갈등으로 그동안 몸무게가 두관이나 빠지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만남이란 무엇일까 하고. 1946년 겨울, 제가 13살 적이지요. 서울이라고 와보니 돈이 없으면 공부도 할 수 없고, 또 너무나 배가 고파 38선을 넘어 어머니한테 도로 가려는데 지금 북쪽은 네 에미의 머리 위에도 시뻘겋게 뿔이 난 소굴이 되었으니 못간다고 해서 대들었지요. 이때 마구 때려 얻어맞으며 저는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의 만남은 그냥 핏줄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마음이 어영차 부둥켜안는 거라고. 그렇습니다 어머니, 우리들의 만남은 추상적 인도주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의 피눈물로 와장창 분단을 무너뜨리는 것이요, 그리하여 우뚝 선 곳도 없고, 후미진 곳도 없는 태평천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이 땅의 갈라짐은 모순의 양면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만나야 하니깐요. 그래서 이번 이산가족 상봉계획에 동생 인순이와 함께 1차로 신청했지만 안됐습니다. 그래도 어머니 실망하시지 마세요. 캄캄한 절망을 헤집다보니 밤을 지샌 숲은 한 방울 이슬로 남더라구요. 오늘 못 만나면 내일 만나고 내일도 안되면 이슬로 만나면 되는 겁니다. 그때까지 거저 살아만 계세요.

어머니 바람맞이 기억나세요? 제가 우거지를 먹고 언쳤던 대여섯살 적에 저를 발가벗겨 바람부는 언덕에 올려놓으시고는 저 바람에 맞설 것이면 꺾였던 네 기가 되살아나 마침내 저 바람기를 네 몸으로 합치는 얼참(순간), 쑥 하니 언쳤던 것이 내려 갈 것이라고 일러주시던 바람맞이. 그렇습니다 어머니, 저도 다 늙었지만 오늘도 역사의 바람 몰아치는 언덕에 알몸으로 섰습니다. 그리하여 가난엔 결코 꿇지 않던 당신의 아들, 이 쌍도끼 기완이가 이참에도 또 못 가고 이렇게 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니! 거저 살아만 계세요.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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