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을 앞둔 사람이나, 북한의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마음은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이미 만난 듯 곳곳에서 애절하고 감동적인 이별과 만남의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올림픽파크텔▼
○…14일 오후 올림픽파크텔에서는 연두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순례할머니(89)가 적십자사 직원들을 붙잡고 “아들이 지 어미 이름을 엉뚱하게 쓴 것이니 제발…”이라며 자신을 상봉 대상에 포함시켜줄 것을 애원했다. 북에서 내려오는 김규열씨(68)가 자신의 아들인데도 어머니 이름을 계모 이름으로 써보내는 바람에 상봉단에 끼지 못했다는 것. 이할머니는 아들 김씨를 낳은 뒤 불화로 시집을 나오며 관계가 끊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간간이 아들을 불러내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지만 ‘생모의 정’을 심어주기엔 부족했던 탓일까. 서울로 유학을 떠난 뒤 연락이 끊긴 아들 이름을 북측 방문자 명단에서 확인했으나 정작 상봉 대상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은 빠졌던 것. 이할머니는 김씨와 만나는 그의 이복동생에게 하소연해 “형님과 만나 생모의 생존 사실을 알리고 본인 의사를 물어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할머니는 혹시 아들 만날 ‘마지막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과거 시가쪽 사람들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은 것. 그는 자신의 숙소도 마련되지 않은 호텔 로비를 밤늦게까지 지키며 아들에게 주려고 준비한 시계와 옷가지 위로 눈물을 떨궜다.
○…50년 만에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만나러 올림픽파크텔에 온 백금옥씨(51·여)는 오빠를 찾아 나선 백복순씨(54) 등 고모 2명을 36년 만에 재회,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언론보도를 통해 아버지 백기택씨(68)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적십자사에 상봉신청을 한 백씨는 뒤늦게 역시 오빠를 찾아 나선 고모들을 찾는 행운을 얻은 것. 14일 오후 2시경 올림픽파크텔에 모인 백씨와 고모 가족들은 백기택씨와의 상봉에 앞서 36년 만에 헤어진 가족을 찾는 기쁨을 누렸다.
○…북에서 내려오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올림픽파크텔에 모인 남측 가족들이 가져온 0순위 선물은 ‘가족 앨범’. 북의 동생 이상운씨를 만나러 온 이상덕씨(77·강원 철원군 동송읍)는 남한에 있는 4남매의 사진은 물론 아들과 손자대의 사진까지 담은 앨범과 가계도(家系圖)를 가져오기도.
또 홍두진씨 가족도 북에서 올 형님의 옛날 사진을 따로 모은 사진첩과 남쪽 가족들의 앨범을 준비.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준비한 가족들도 다수. 동생을 만나러 온 백운옥씨(66·서울 도봉구 창5동)는 동생이 과거에 입던 옷과 신발, 구두주걱을 50년 동안 간직하다가 가져왔으며 큰아들을 만나려는 장순복할머니(88·강원 강릉시 초당동)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며느리를 위해 자신이 30년간 갖고 있던 낡은 시계와 옥가락지 브로치 등 패물을 곱게 싸갖고 오기도.
○…반세기만에 혈육을 만나기 위해 올림픽파크텔에 모인 이산가족들은 가족당 상봉인원수가 5명으로 제한돼 ‘초과인원’은 손꼽아 기다리던 상봉을 이루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기 때문에 또 다른 헤어짐을 아쉬워하기도. 북에서 오는 하경씨(74)를 만나러 호텔을 찾은 정휴(73), 철휴씨(67) 형제 등 6명은 논의 끝에 큰누나 하순휴씨(78)가 빠지기로 결정되자 적십자사 직원들의 팔을 붙잡고 애원했으나 ‘방법이 없다’는 답변에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여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올림픽파크텔에 여장을 푼 이산가족들은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언론사 사장들에게 ‘9, 10월에도 상봉이 계속되고 내년에는 고향방문도 추진하겠다’고 밝힌 대목을 놓고 또다른 기대감을 표시. 도재익씨(77)는 “내년엔 고향집에도 갈 수 있다니 꼭 실현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호텔과 대한적십자사측은 오직 북의 가족을 만날 생각으로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호텔을 찾은 고령의 이산 가족들을 위해 10여명의 특별의료팀을 구성했으며 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휠체어 8대와 가족당 1명씩의 봉사요원도 배치. 가족들이 묵을 5층부터 15층까지의 객실은 서로의 사연은 다르지만 같은 이산의 아픔을 나눌 수 있도록 서울부터 부산까지 11개 지방으로 나눠 배정.기도.
▼워커힐 호텔▼
○…북으로 가기 위해 평소보다 이른 오전 5시에 일어나 유달리 몸치장에 신경을 쓰는 남편 김사용씨(7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를 배웅하던 아내 최연희씨(71)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워커힐호텔로 가기 위해 딸, 사위와 함께 차에 오르는 남편의 등에 대고 최씨는 “잘 다녀 오세요. 행여 안돌아오실 생각일랑 하지 마세요. 그간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많이 했는데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고요”라고 말한 뒤 눈물을 글썽인 것.
평북 박천이 고향으로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내려왔다가 포로가 돼 남한에 정착한 김씨는 남쪽에서 재혼해 낳은 딸 현숙씨(38)도 북에 두고 온 딸 현실과 같은 ‘현’자 돌림자로 이름을 지었다고.
○…관절염으로 휠체어를 탄 채 방북길에 오르게 된 김금자씨(69·여)는 “몸이 아파 북쪽의 친지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별로 준비하지 못해 가슴 아프다”고 아쉬움을 표시. 김씨는 평소에도 다리는 아팠지만 거동엔 큰 지장이 없었으나 한달 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뒤 긴장이 풀리면서 걸음을 걷지 못하게 됐다고.
김씨의 남편 신언재씨(74)는 “50년 만에 친오빠를 만난다는 기쁨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시피 한 아내가 진통제를 지니고 가지만 건강이 걱정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여동생 둘과 남동생을 만나러 가는 김선희씨(78)는 카메라 면도기 시계 계산기 등 생필품에다 사계절 옷 등 무려 40벌의 옷가지를 선물로 준비. 사위 박영일씨(54)는 “장모님이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북의 동생들도 47년 헤어질 당시 모두 기독교인이어서 성경책을 꼭 갖고 가고 싶어했으나 휴대치 못하게 돼 있어 아쉬워했다”며 장모를 위해 청심환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남측 방문단 중에는 처음 만난 사이지만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금방 오랜 친구처럼 친해지기도.
강보희(74·여·충남 부여군) 강성덕씨(67·여·대구 달서구)는 “오늘 처음 만났는데 알고보니 종씨”라며 계속 손을 꼭 붙잡고 다녀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이기도.
13일 처음 만난 이동선(72·전남 해남군) 이몽섭씨(75·경기 안산시)도 아침식사 후 나란히 호텔 정원을 산책.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