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에 의지한 망백(望百)의 어머니가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인 아들을 부둥켜안았다.
백발이 성성한 아들이 휠체어에 몸을 맡긴 아버지 앞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다 설움에 겨워 어깨를 들먹였다.
50년 동안 수절한 아내는 할아버지로 변한 지아비의 손을 쥐고 말을 잊었다. 인민군이 돼 월북한 형님을 끌어안은 동생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기억을 잃은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제가 왔어요”라고 안타깝게 소리치는 아들도 있었다.
상봉 장소인 서울의 컨벤션센터와 평양의 고려호텔은 금세 눈물바다로 변했다. 끌어안고 울다가 얼굴을 바라보고 다시 울었다. 곱게 차려 입은 치마저고리가 젖었다. TV를 지켜보던 국민도 함께 울었다.
이들의 오열 속에 멈췄던 시간이 그제서야 흘렀다. 분단의 역사 속에 사무쳤던 이산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을까. 살아 남은 게 고마울 뿐이었다.
북측 방문단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고려항공기를 타고 서해 직항로를 날아오는 데는 꼭 54분이 걸렸다.
활주로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일류신62M 항공기의 기체 꼬리에는 붉은색 인공기가 선명했다.
남측 방문단은 북측 방문단을 싣고 온 고려항공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나 평양의 순안공항으로 날아갔다. 방문단 수는 북측과 같은 이산가족 100명, 수행원 30명, 기자단 20명 등 모두 151명.
유미영(柳美英)북측 방문단장은 서울 도착 성명에서 “굳게 얼어붙었던 대결과 분열의 장벽은 이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장충식(張忠植)남측 방문단장은 “머지않은 장래에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남북 방문단은 환영 만찬 후 꿈에서나 그리던 고향에서의 첫밤을 맞았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