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의 窓]"할아버지 우리도 뵙고 싶어요" 피켓 행렬

  • 입력 2000년 8월 16일 18시 56분


‘오경수 할아버지, 고향 방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경수 환영합니다. 조카 일동’

북측방문단의 오경수씨(70)가 지나는 서울시내의 주요 장소에는 이같은 내용의 피켓을 든 ‘시위대’가 여지없이 나타나곤 한다.

오씨가 15일 낮 숙소인 워커힐호텔에 도착했을 때 로비에 처음 등장했던 이 60여명의 ‘시위대’는 집단상봉장의 복도, 개별상봉장의 앞뜰 등에서 “오경수”를 목청껏 외쳐댔다.

오씨를 제외한 남한 거주 다섯 형제자매의 자녀와 손자들인 이들은 상봉 명단에 낀 5명을 제외하곤 오씨를 직접 대할 기회가 없자 이런 방법을 궁리해냈다. 피켓으로 눈길을 끌어 길거리에서나마 짧은 접촉을 해보려는 것.

호텔에서의 첫 시도는 실패. 15일 오후 집단상봉장 복도에서도 오씨와 마주치기는 했으나 수행원들의 통제로 역시 실패. 마침내 16일 낮 워커힐호텔 가야금홀 앞에서 조카 등 10여명이 오씨와 5분 정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이들은 1세대 부부를 제외한 2세대 36명, 3세대 33명 등으로 대부분 호남과 충남지역에서 상경해 올림픽파크텔 주변의 모텔 등에 분산돼 나흘간 머물고 있다.

개별상봉이 이뤄진 16일 오전에는 오씨의 호텔방 앞뜰에서 이들 10여명이 유리창 너머로 무선전화기로 통화하며 ‘손짓 몸짓 대화’도 곁들었다.

“지나는 곳마다 시위하는 것처럼 보여 부담을 드렸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너무 뵙고 싶어 그랬어요.”(조카)

“괜찮다. 눈에 잘 띄니까 길거리에서 너희만 찾는다.”(오씨)

오씨의 외조카 최화춘씨(37) 등은 이렇게 원격대화를 나누던 중 처음 접하는 외삼촌이지만 혈육의 정은 어쩔 수 없었던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날 시위부대에 속하지 않은나머지 가족들은 경수씨의 북쪽 가족들에게 건넬 선물을 준비하느라 백화점과 동대문시장 등을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가야금홀 앞에서 잠시 오씨의 품에 안겼던 박지혜양(12·중1)은 “오빠 동생들과 함께 북한의 할아버지 댁에 빨리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희제기자>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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