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9시반경 북측 이산가족방문단이 묵고 있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 앞 광장. 경기 부천시에 사는 김상일씨(71)가 북에 있는 부모 등 일가족 6명의 이름이 적힌 패널을 상반신 앞뒤로 걸고 나타났다.
김씨는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96), 어머니(92), 형(73), 누이(60) 등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다녀 눈길을 끌었다.
48년 가정이 너무 가난해 함께 살다가는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도망쳐 남하했으며 그 죄스러움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는 김씨는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해서라도 북의 가족을 찾고싶어 무작정 나섰다”고 말했다.
이날 워커힐호텔 앞을 하루종일 서성거리던 정찬구(鄭燦九·77·경기 남양주시)씨는 끝내 울먹이는 목소리로 “제발 생사확인만이라도…”라고 하소연했다.
정씨가 호텔까지 온 것은 혹시라도 북한 인사들을 만나면 6·25 때 헤어진 부인(70)과 아들(50)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
워커힐호텔 주변에는 15일부터 매일 이들처럼 50년 이산의 한을 가진 사람들이 수백명이나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이미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기라도 한다면 제사라도 지낼 것 아니냐”며 50년 이산의 아픔을 토로했다.
워커힐호텔 앞뿐만이 아니다. 남측 방북단이 떠나던 15일 김포공항에는 수백명의 이산가족들이 몰려나와 혹시라도 생존해있을지 모르는 북의 가족에게 전달되게 해달라며 안부서신을 맡기기도 했다. 이번에 적십자사에 가족상봉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고령의 실향민 중에는 북에 두고 온 혈육생각에 아예 몸져누운 경우도 적지 않다.
온나라에 이산가족의 한과 눈물이 넘쳐나고 있다. 실향민뿐만 아니라 이산가족이 아닌 시민들도 하나같이 다음 번에는 나머지 이산가족도 혈육을 찾게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추정치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남측의 이산가족 수는 767만여명에 달한다. 따라서 대다수 이산가족에겐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은 ‘선택된’ 200가족만의 행사였다. 여기에 끼지 못한 이산가족에겐 혈육의 생사확인부터가 염원이 되고 있다.
16일 대한적십자사에는 직접 찾아와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한 사람이 110명이었으며 문의전화도 1000여통이나 됐다. 이는 평소보다 2, 3배 가량 많은 수치로 이는 나머지 이산가족의 슬픔을 대변하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제한된 인원만으로 이뤄진 8·15 이산가족 상봉은 상봉가족이나 이산가족 모두에게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낳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이산가족면회소 설치를 통한 상봉의 정례화 또는 상시화, 그리고 서신왕래 및 물품교환의 자유화 등이 남북 당국간에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게 이산가족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 이는 결국 남북의 정부당국에 떠맡겨진 과제인 셈이다.
<이철희·선대인기자>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