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둘째 아들이 명복을 빌고자 절을 드리러 왔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저를 만나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시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왜 먼저 세상을 뜨셨단 말입니까….”
▼흐느끼며 추모시 낭송▼
북한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계관시인’칭호를 받고 있는 오영재씨(64)는 16일 오전 쉐라톤 워커힐호텔 객실에서 형 승재씨(67·전 한남대학원장) 등 형제들과 다시 만나 부모님 영전에 사모곡(思母曲)과 술을 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영재씨는 북한에서 준비해 온 부모의 영정사진이 새겨진 검은 돌을 창가에 올려놓고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으로부터 환갑선물로 받았다는 술잔에 금강산참나무열매술을 따른 뒤 큰절을 올렸다.
오씨는 이 자리에서 ‘무정’ ‘슬픔’ ‘사랑’ 등 어머니를 추모하는 자작시 3편을 형제들의 흐느낌 속에 직접 낭송했다. 이 자작시들은 95년 어머니가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접한 뒤 지은 것.
“차라리 몰랐더라면/차라리 아들이 죽은 줄로 생각해 버리셨다면/속 고통 그리도 크시었으랴/그리워 밤마다 뜬눈으로 새우시어서/꿈마다 대전에서 평양까지 오가시느라 몸이 지쳐서/그래서 더 일찍 가시었습니까/아,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어머니 나의 엄마!/그래서 나는 더 서럽습니다. 곽앵순 엄마!”(‘슬픔’의 일부)
▼호텔방에 제사상▼
다른 호텔방에서도 어머니 제사를 위해 미리 술을 준비해온 북쪽의 형 박상업씨(68)가 남쪽의 동생 상우씨(62)가 가져온 사과 배와 사진으로 제사상을 차려 놓고 58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제사를 지냈다.
“불효자 큰아들 이제야 절 올립니다, 어머니.”
상업씨는 고운 명주옷을 한 번 입어보고 싶어했던 어머니를 잊지 못해 수 십 년 동안 명주 한 필을 고이 간직해 왔으나 그대로 두고 온 것을 애통해 했다.
김규설씨(66)도 여동생 규숙씨(65)와 남동생 규석씨(59) 등 남쪽의 가족들이 준비한 소주 과일 등을 제수 삼아 어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80년 숨진 아버지 앞에 ‘약식 제사’를 올렸다.
▼한복 입고 약식제사▼
동생 규석씨로부터 아버지가 80년 음력 2월에 돌아가셨다고 사망날짜를 처음 전해들은 규설씨는 한복을 차려입고 앨범 속의 아버지 사진을 영정 삼아 정중히 절을 올렸다.
“아버님, 제가 어릴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상처의 아픔을 감추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시고….”
규설씨는 방바닥에 엎드려 아버지와 대화하듯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박희제·전승훈·김승진기자>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