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온 친구는 아산에서 100세난 어머님이 오셨는데 우리 어머니만 못 오셨다”며 “꼭 만나서 인사를 올려야지”라며 연방 눈물을 훔쳤다.
김씨는 앰뷸런스로 이동하기도 힘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 7년 전부터 노환으로 병상에 누운 김씨도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왔는데 나도 갈 테야, 약이라도 사다줘”라며 아들과의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6·25전쟁이 터진 뒤 대전중 3학년 때 의용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가족과 헤어진 양씨는 15일 동생들과의 첫 상봉 자리에서 휴대전화로 어머니와 ‘음성상봉’을 했다.
양씨는 “전화통화 때 우느라 어머니와 몇마디 나누지 못해 아쉬움 때문에 밤새 한숨도 못 잤다”며 “또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앞을 가린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서울에 있으면서도 모자 상봉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상봉을 지정된 장소에서만 하기로 했기 때문. 양씨가 어머니의 집으로 개별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생 한종(漢宗·64)씨가 “법에도 예외가 있다. 서교동 집 방문을 요청해보자”고 하자 양씨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서로 합의한 사항은 서로 그대로 해줘야 한다”고 오히려 동생을 말리기도 했다.
대한적십자사 김성근 회담지원팀장은 “애틋한 사정이야 이해하지만 이산가족 방문이 앞으로 계속되도록 양측이 합의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창기자>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