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北유열씨 50년만에 받은 '인세 50만원'

  • 입력 2000년 8월 16일 23시 15분


북한에서 온 국어학자와 남한의 고서점 주인이 50여년만에 만나 밀린 인세(印稅)를 주고 받았다. 주인공은 이산가족 방문단으로 서울을 찾은 유열(柳烈·82)씨와 서울 관훈동에서 고서점 ‘치마바위 산방’을 운영하는 이겸노(李謙魯·90)옹.

16일 오후3시 서울 잠실 롯데월드 민속관 입구. 지팡이를 짚은 채 북측 방문단 일행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이옹은 유씨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 통문관(通文館) 주인이오. 모르겠소?”라는 이옹의 물음에 유씨는 해방 직후의 기억이 가물가물 떠올랐다. 당시 30대 초반의 국어학자였던 유씨는 국어국문학자들의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던 이옹의 통문관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그와 남다른 교분을 쌓았던 것.

“맞아….” 짧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유씨가 “이게 얼마 만이오”라며 이옹의 팔을 잡자 이옹은 불쑥 노란 표지의 책 두 권을 내밀었다. ‘농가월령가’였다.

이옹의 설명. 해방 직후 유씨가 쓴 농가월령가 해설서를 기초로 이 책을 펴냈는데, 이제야 그 원고료를 주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이옹이 내미는 흰 봉투에는 50만원이 담겨 있었다. “남쪽에 가족들이 있으면 주려 했는데 찾을 수 없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유씨는 책 두 권과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그때 고려대에서 국어를 연구할 때 통문관 도움이 컸지요. 이렇게 찾아 줘서 고맙고…. 통일 될 때까지 우리 건강하게 삽시다”라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이옹은 유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유씨도 몇번 뒤돌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처럼 ‘50년 묵은 숙제’를 해결한 경우는 북한의 수학자 조주경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는 이날 사촌동생의 주선으로 서울대 문리대 재학 시절 은사 윤갑병(尹甲炳·75)씨와 전화 통화를 했다.

조씨는 학창시절 윤씨가 아껴준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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