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살림터'는 지난 92년 재미교포들이 발간한 문집 '통일예술' 誌에 기고된 오씨의 연시를 지난 93년 펴낸 '쇠찌르레기'란 제목의 북한 우수단편선집에 부록으로 담았다.
다음은 오씨의 연시. <아, 나의 어머니>
-40년만에 남녘에 계시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고맙습니다▼
생존해 계시니
생존해 계시다니
필순이 다된 그 나이까지
오늘도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다니
그것은
캄캄한 밤중에
문득 솟아오른 해님입니다
한꺼번에 가슴에 차고 넘치며
쏟아지는 기쁨의 소나기입니다
그 기쁨 천 근으로 몸에 실려
그만 쓰러져 웁니다.
목놓아 이 아들은 울고 웁니다
땅에 엎드려 넋을 잃고
자꾸만 큰절을 합니다.
어머님을 이날까지
지켜 준 것은
하느님의 자비도 아닙니다
세월의 인정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 아들을 다시 안아 보기 전에는
차마 눈을 감으실 수 없어
이날까지 세상에 굿굿이 머리 들고 계시는
어머님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앞에
내 큰절을 올립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여, 고맙습니다.
▼아들의 심정▼
한해 한해 더해간
어머님 나이
이 내 가슴속에
아픈 칼 끝으로
새기며 흘러간 일흔아홉 그 나이
사흘이 멀다하게
꿈에 보는 어머니
이제껏 살아 계시리라
차마 믿을 수 없어
그런 날이면 온종일 울적한 심사
이 아들에게 기울이는
그 사랑의 힘으로 어머님은 이날까지 생존해 계시는데
어머님을 믿는
자식의 마음은 모자라
물리칠 길 없는 의혹과 불안속에 이내 생각 헤매고만 있었으니
어머님 용서하십시오
▼부르다만 그 이름▼
한밤중에 일어나
불을 켜고
다시 보는 어머니 얼굴
먼 미주를 에돌아
나에게 온 사진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건만
너무도 오랜 세월이 헝클어 버린 생각
나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던가
남들처럼 네게도
정말 어머니가 있었던가
열여섯에 집을 떠나
쉰이 퍽 넘을 때까지
대답해 줄 어머니가 곁에 없어
단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태여나 젖을 물며
제일 먼저 배운 말이건만
너무도 일찌기 헤어져 버린 탓에
부르다만 그 이름
세상에 귀중한 어머니란 말을 잃고
그 말 앞에선 벙어리가 되여 버린 이 자식
40년만에
이 벙어리가 입을 엽니다
어머니의 사진을 앞에 놓고
엄마!
어무니!
▼사진을 보며▼
어머니의 눈을 봅니다
바라보면 정이 흘러
내 마음과 하나로 되여 버리던
그 눈을
어머니의 손을 봅니다
쓸어 주면 따스해
내 살과 하나로 되여 버리던
그 손을
어머니의 가슴을 봅니다
얼굴을 묻으면 부드러워
내 몸과 하나로 되여 버리던
그 젖가슴을
긴 세월
마음속에 움켜쥐고 온
그 눈
그 손
그 가슴
그 누가 나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을 수 있었단 말인가
분렬세력이 아무리 장벽을 높이 쌓
아도
결코 갈라놓을 수 없는
어머니여
어머니와 나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하나입니다
▼목소리▼
로스앤젤스와 대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영희 회장과 어머니가 주고받은 전화
고맙게도 나에게 보내 준
그 록음테프를 풀며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귀에 익다하기엔
너무도 그 목소리 삭막해
다시 또 다시 또 듣노라면
멀리 흘러간 나날들을 되살려 주며
그날에 울리던
어머니 목소리
눈오는 창가에서
나를 업고 서성이며
나직히 자장가를 불러 주시던
그 목소리
내 홀로 밤길 걸어 집으로 올 때
어둠 속 저쪽에서 나를 찾던 목소리
생일상 차려 놓고
시루떡 냄새를 풍기며
"영재야,일어나거라"
나를 깨우던 그 목소리
아득한 세월의 장막을 뚫고
울려 오는 목소리
멀리 흘러가 버린
내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싣고 오는 소리
여닫던 고향집의 문소리와
아침 저녁 확독에 보리쌀 갈던 소리
연기 피는 아궁이 앞에서 짜내시던
그 눈물과
동백기름 내음새를
싣고 오는 소리
애써 더듬어서
드디여 찾아낸
어머니의 귀에 익은 목소리
이제는 내 한생에 다시는 지워질 거냐
더는 갈라져 살지 말자
목메여 나를 부르는
어머니 소리
통일의 해님 안고
어서 오라,어미품으로
어서 오라,어미품으로
나를 부르는
아,어머님의 목소리!
▼늙지 마시라▼
늙지 마시라
더 늙지 마시라,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여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세월아,섰거라
통일되여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살씩 먹으리
검은빛 한 오리 없이
내 백발 서둘러 온 대도
어린 날의 그때처럼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에
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으리니
어머니 찾아가는 통일의 그 길에선
가시밭에 피흘려도 아프지 않으리
어머니여
더 늙질 마시라
세월아,가지 마라
통일되여
우리 서로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통일예술』2집,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