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평양에서]뜬눈 밤샘에 또 만지고 껴안고

  • 입력 2000년 8월 17일 18시 57분


평양에서 50년 만에 둘째 아들 경희씨(62)를 만난 강기주(姜基周·90)씨는 마지막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샜다. 지난 세월 가슴에 못이 되어온 경희씨를 품에 안았던 사흘은 이렇듯 속절없이 흘러버렸다. 이 밤이 가면 어쩌면 영영 다시 못볼 아들. 이산가족 방문단 중 최고령인 강씨는 17일 마지막 상봉이 안타까운 듯 경희씨의 주름진 얼굴을 만지고 또 만졌다. 조금이라도 더 손끝에 자식의 모습과 체취를 담고 싶었다.

호텔방 창 밖으로 비치는 평양의 밤거리는 고적하기만 하다. 멀리 ‘주체사상’을 선전하는 네온사인의 아스라한 불빛을 바라보면서 강씨의 머릿속에는 전쟁과 피란, 그리고 이산의 한맺힌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평북 영변이 고향인 강씨는 51년 ‘1·4’후퇴 때 아내 김원찬씨와 큰아들 덕재(64), 둘째 경희씨의 손을 잡고 피란길에 올랐다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아내와 어린 경희씨를 청천강 인근 친척집에 잠시 맡겼다. “전쟁이 끝나면 곧 돌아올테니 고향에 가 있으라”고 아내에게 건넸던 말이 마지막 인사였다. 그러나 반백년 만에 돌아온 무정한 남편을 아내는 끝내 기다리지 못했다.

적십자사로부터 평양방문단에 선발됐다는 통보를 받고 행여 건강 때문에 아들을 못만날 세라 식사도 거르지 않고 부지런히 운동을 했던 강씨였다.

15일 첫 상봉이 이뤄진 날, 강씨는 벌써 할아버지가 된 경희씨를 붙들고 엉엉 목놓아 울었다. 강씨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되뇌었다.

하지만 건강한 몸으로 상봉의 충격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탓일까. 강씨는 아들을 만난 첫날부터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강씨는 10년 전 일본에 갔을 때 둘째 아들 몫으로 사온 고급 손목시계를 경희씨의 팔목에 채워주었다.

강씨는 17일 “경희를 만난 사흘간은 앞으로 영영 잊을 수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행여 깨어 있으면 이별의 순간이 늦춰지지 않을까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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