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상봉날인 15일, 김희조씨(73·부산 해운대구 반여2동)는 분명히 생존한 동생을 만나기로 돼있는 고려호텔의 지정된 테이블에서 전혀 낯모르는 사람과 만났다. 둘째 삼촌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밝힌 김형조씨(67)가 동생 귀조씨 역시 이미 세상을 떴다는 말을 전했다.
동생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할 시간에 희조씨는 목을 놓아 절규하고 말았다.
“오빠도 있었고 동생이 넷이나 있었는데 조카들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왕래가 없었는지 희조씨의 가족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촌동생’을 마주한 희조씨는 기가 막힐 뿐이었다. 다만 희조씨의 가족이 평북 영변군에서 살지 못하고 멀리 옮아갔다는 것 정도가 희조씨가 방북길에서 얻은 전부.
“명단이 처음 발표됐을 때 동생 하나 외에는 생존한 가족이 없다기에 얼마나 마음이 아득했는지 몰라. 동생이라도 만나 다들 어떻게 살았는지라도 들으려고 했는데.”
부모와 가족들이 어떻게 세상을 떴는지 동생이 얘기해줘도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희조씨는 평양까지 가서 소식하나 듣지 못하고 내려오는 심정을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다. 낮에는 의연히 일정을 따라 다녔지만 평양에 머문 4일간 희조씨는 밤마다 눈물을 쏟아야 했다.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이북의 가족들이 살았던 시절의 얘기라도 듣는단 말이오.”
동생에게 주려던 사진을 고스란히 도로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희조씨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듯 천주교 묵주반지를 손에 쥐고 허탈한 발걸음으로 공항을 나섰다.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