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영(盧信永)전총리가 고희를 맞아 회고록을 냈다. 출생과 면학, 27년간의 외교관 생활, 2년 8개월의 ‘문관(文官) 안기부장’ 시절, 2년 3개월여의 총리 시절의 일화 등 개인사와 격동의 현대사가 일지식으로 담담하게 정리돼 있다.
그는 월남한 탓에 임종도 하지 못한 부모님에 대한 불효를 사죄하는 뜻에서 머리말을 통해 ‘이책은 부모님 영전에 바치는 인생보고서’라면서 ‘부모님은 아들이 적은 글 그대로를 좋아하시리라 생각하여 이 회고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전부 적었다’고 밝혔다.
그가 책에서 털어놓는 일화 가운데 흥미로운 것들도 많다. 5공 시절인 82년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이 주위의 만류에도 김대중(金大中) 현대통령을 석방한 일, 83년 미국의 조언으로 비행코스를 바꿔 일정을 조정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아웅산 테러사건의 희생이 그나마 줄어든 것, 박종철 고문치사 및 범인 축소 조작과 관련해 87년 정치적 책임을 지고 32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할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들 등을 연대별로 소개하고 있다.
좀 더 화끈한 비사(秘史)를 기대하는 이에게 이 회고록은 아쉬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직시절의 직무와 관련된 일을 시시콜콜 과장되게 털어놓음으로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 보다는 노전총리의 태도가 훨씬 값질 수있다. 그가 회고록의 마지막에 인용한 에머슨의 시 ‘To Have Succeeded(무엇이 성공인가)’는 그의 성공 비결을 짐작하게 한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