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의 링은 챔피언 벨트를 놓고 혈전을 벌이는 ‘피의 무대’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인주와 홍창수가 맞붙은 일본 오사카 공립체육관 특설 링은 달랐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재일대한민국거류단(민단)과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3000여명은 이날 서로 어깨를 결고 ‘하나된 조국’을 그리며 통일을 합창했다. 남북으로 상징된 태극기와 인공기는 물론 통일을 기원하는 ‘한반도기’가 경기 내내 물결쳤다.
남과 북의 프로복싱선수가 사상 처음 맞붙은 이날 민단과 조총련은 세 평 남짓한 링을 둘러싸고 모여 앉아 50년이 넘게 이어온 적대와 반목을 삭이고 ‘분단의 벽’을 완전히 허물었다. 한국가수 조항조씨와 조총련계 일본 대중가수 강춘미씨가 국가 대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는 장면은 ‘하나된 민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사투가 끝난 뒤에도 화합의 물결은 계속됐다.
챔피언에 오른 홍창수는 한반도기를 몸에 감싸고 아버지 홍병윤씨(62)와 어머니 권민자씨(57) 등과 함께 어깨동무한 채 통일을 외쳤다. 홍창수는 “일본국가가 울려퍼질 때는 귀에 들리지도 않더니 ‘우리의 소원’을 따라 부를 때는 울컥 눈물이 났다”며 통일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나타냈다.
한편 이날 경기는 일본에서 오랜만에 펼쳐진 세계 타이틀전이었지만 홍창수가 일본명 토쿠야마 마사모리 대신 원래 국적과 한국식 이름을 ‘고집’함에 따라 TV중계가 되지 않았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