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에 사는 교민 전영철(全榮哲·69·사진)씨는 요즘 부쩍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생각에 잠을 설치는 일이 많다.
이곳 호주 교민사회에서는 며칠 후 올림픽 참가를 위해 호주에 도착할 북한 선수단에 대한 환영준비 얘기가 단연 화제다. 누구는 숙소를 미리 구하지 못한 임원들에게 잠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하고 누구는 선수촌에 찾아가 대대적으로 환영식을 해주겠다고도 한다.
전씨가 속해 있는 재호(在濠)이북 5도민회도 선수단과 만찬행사를 하기 위해 북측과 줄이 닿아 있는 이모씨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의사를 타진 중이다. 호주에 있는 이산가족만도 150여명.
함경도가 고향인 전씨는 6·25전쟁이 터진 직후 인민군에 끌려가기 싫어 집을 나와 해안가에서 명태잡이배를 훔쳐 강원 강릉시 주문진으로 도망을 쳤다.
한두 달이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려니 했는데 그게 벌써 50년이 다 됐다고 말하는 전씨의 눈가에 참았던 눈물이 글썽였다. “38선이 남북을 갈라놓은 날 고향에 두고 온 열살 남짓한 남동생과 어머니 생각에 밤새 목놓아 울었어요. 지금은 얼굴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니 세월이 무서운 거예요.”
전씨는 남북이산가족의 상봉 장면을 얼마 전 비디오를 빌려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서로 껴안고 얼굴을 비비며 헤어진 한을 달래는 이산가족을 보며 전씨는 주책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한 번 만난 사람들이야 다시 헤어지자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지만 재외동포라고 상봉대상 추첨에도 끼지 못하고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한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전씨는 외국에 이민을 가면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나을 것이고 북쪽 가족을 찾기도 쉬울 것이라는 생각에 79년 호주로 이민을 왔지만 그게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전씨도 한 때는 북의 가족을 찾는 일을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혈육에 대한 끈은 사람의 힘으로 끊을 수 없었다.
”때마침 이 곳에서 올림픽이 열려 북한 선수들이 온다니 고향 사람처럼 잘해주고 싶어요. 어차피 다 같은 동포 아닙니까.”
전씨는 가족들과 함께 짬을 내서 북한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를 볼 생각이다.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다보면 조금이라도 응어리진 가슴의 한이 씻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
“선수들이 자유시간이 있다니까 식사라도 대접해야 할텐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전씨는 지금 한껏 가슴이 부풀어 있다.
<시드니〓신치영·윤정훈기자>higgledy@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