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마처럼 얽혀 있는 정국에 대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입장이자 유일한 해법이다. 김대통령은 선거비용 실사개입 의혹이나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 등 여야관계를 악화시킨 일련의 현안들을 모두 국회에서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현안은 국회 내에서 토론을 거쳐 표결에 부치고 그 결과에 여야 모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야당 시절 장외투쟁을 주도한 장본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때는 원내에서의 정상적인 토론과 의사결정 절차가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반박논리다.
여권이 한빛은행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특검제 실시 요구는 수용할 수 없지만 국정조사는 검토할 수 있다는 절충안을 정리한 것도 크게 보면 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국정조사 실시는 국회 내에서의 여야 대화와 합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특검제는 곤란하다”는 김대통령의 생각은 확고한 것 같다. 박준영(朴晙瑩)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17일 “검찰이 수사를 진행 중인데 특검제를 실시하는 것은 국법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검찰권 독립’을 강조해 온 김대통령으로서는 특검제가 이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게 참모들의 설명이다.
또 지난해 ‘옷로비 사건’때 특검제를 실시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오히려 국론분열과 국력낭비라는 부작용만 초래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내심 특검제까지 양보하게 되면 야당에 정국주도권을 넘겨줘 계속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도 짙게 깔려 있는 듯하다.
그래서 청와대 내에는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으므로 평가는 역사에 맡기고 할 일만 해나가자”는 강경론도 적지 않다.
김대통령은 야당이 계속 강공을 펼 경우의 뾰족한 대책은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야당이 제풀에 꺾이거나 여론이 이런 상황을 유도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이나 여론도 비판적이어서 김대통령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최영묵기자>y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