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한달 넘게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여권은 이를 비난하면서 방관만 할 뿐 한나라당을 장내로 끌어들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오히려 여권의 자중지란(自中之亂)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국정운영에 대한 여권의 자신감 상실에 따른 난맥상이 곳곳에서 노정 되고 있다. 그리고 그 파장은 각 분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의약분업에 대해서는 이제 여권 내에서조차 공공연히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역시 민생과 직결된 경제상황의 악화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정이 걷잡을 수 없이 표류하고 있는데도 여권이 이를 추스를 만한 힘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현 정부 출범 당시의 개혁에 대한 열정을 여권 관계자들로부터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비전의 실종과 정권 재창출에 대한 확신의 결여가 여권 난조의 근인이 되고 있다. 요즘 민주당에선 “정권재창출만 확실하게 된다면 나도 입을 다물고 있겠지만…”이라는 전제를 달아 지도부를 비판하는 의원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류는 관료조직에도 그대로 전이되고 있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자체진단이다. ‘뒷날’을 위해 몸을 사리는 관료 특유의 보신주의가 급속히 되살아나 관료조직의 여권이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문제의 진전이 ‘내치’에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권 내에서도 “경제가 어려워지자 남북관계에 있어서의 치적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정장선·鄭長善의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남북정상회담 이후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만 사활을 걸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이 내정을 꼬이게 한 측면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여전히 ‘충성도’나 ‘개인적 인연’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정국운영 방식도 문제다. 민주당 최고위원을 경선으로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당 3역이 유임되는 등 동교동계 위주의 비공식 라인이 여권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행태가 여전하다는 비판론도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을 좌장으로 하는 동교동계는 민주당 안팎에 포진해 여권의 의사결정을 상당 부분 주도해 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배제된 여권 내 다수 인사들이 정국운영의 방관자가 되거나 비판자로 돌아서고 있다.
따라서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 선거비용 실사개입 의혹사건 등으로 정국이 꼬여만 가도 대안을 제시하거나 해결책을 말하는 사람은 없는 지경이 돼버렸다. 그리고 “소수정권이라 힘들다. 여권이 돈과 정보를 독점하던 과거와는 모든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무기력한 탄식만 현재 여권 내에 무성하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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