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軍대표 장외 '술대결'…제주 허벅주로 상호 탐색

  • 입력 2000년 9월 25일 23시 52분


군인과 술.

25일 제주에서 열린 첫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양측 대표들간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데 기여한 것은 역시 술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열린 1차 회담에서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이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재로 얘기를 풀어나갔다. 그러나 분위기는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분위기는 조장관이 술얘기를 꺼내면서 곧 바뀌었다.

조장관은 북측 부단장인 박승원 부총참모장에게 “어제 허벅주(제주의 특산술)를 별로 안 드시던데요”라고 말을 붙이자 그는 “아닙니다. (남측) 대표분들과 1 대 1로 꽤 먹었습니다”라고 답했다. 북측 대표단장 김일철(金鎰喆)인민무력부장이 “허벅주가 몇 도냐”며 대화에 끼어들었고 남측 김희상(金熙相·육군중장)장관특별보좌관이 “35도입니다”라며 말을 받았다. 김부장은 이어 “남한에는 백세술(백세주)도 있다는데 그건 도수가 좀 낮지요”라고 물었고 김보좌관이 “예. 십 몇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술 얘기가 나오자 대화가 술술 풀리기 시작한 것.

이에 앞서 양측 대표는 24일 만찬에서는 허벅주로 ‘술 전투’를 치렀다. 남측 대표단 11명이 한 명씩 돌아가며 북한 대표단 13명에게 계급순으로 차례로 건배하자 북측도 똑같이 응수한 것. 1인당 30잔 가까운 술이 들어가자 만찬장은 화기애애해졌지만 팽팽한 기(氣)싸움은 계속됐다. 북측 대표단은 남측의 계급 순서를 잊지 않고 직위에 맞게 술잔을 맞추는 ‘정신력’을 보였다.

남측 대표단이 “군인은 역시 ‘폭탄주’ 아니냐, 한잔씩 하자”며 ‘진검 승부’를 제의했으나 북측 대표단은 다음날 회담을 의식해서인지 “폭탄주는 싫습네다”라며 일단 승부를 피했다는 후문이다.

<제주〓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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