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화제]93세 노모 "北에 내아들 살아있다니…"

  • 입력 2000년 10월 2일 18시 44분


“뭐라구유. 지금 뭐라구 했슈. 내 아들 돈구가 살아있다구유?”

2일 경기 안양에 사는 딸(조남구·50·미장원경영)의 집에서 6·25전쟁 때 헤어진 둘째아들 조돈구(趙敦九·69)씨가 북한 원산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노모 이인희씨(93·충남 부여군 세도면 청송리)는 한동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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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직후인 50년 7월 초. 돈구씨가 집 앞마당에서 새끼를 꼬고 있는데 갑자기 빨간 완장을 찬 서너명이 들이닥쳤다. 20일 정도 훈련시킨 후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으로 본 아들의 모습이었다.

이씨가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며 쏟은 정성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

“점쟁이가 마을의 집집을 찾아다니며 동냥한 후 그걸로 떡을 만들어 치성을 들이면 아들이 돌아온다고 해 밤낮으로 동냥하고 다녔어요. 아들 생각에….”

동냥뿐이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집안 문지방을 깨끗이 닦으면 아들이 돌아온다는 다른 점쟁이의 말에 3년간 문지방을 닦기도 했다.

아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주름이 깊게 팬 이씨의 눈가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백수(白壽)를 앞둔 노모의 눈물에는 세월의 무게가 녹아있는 듯했다. 그 방울방울에는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데 대한 감사함과 지난 세월의 이산에 대한 회한이 뒤섞여 있었다.

90년 남편 조동은(趙東殷)씨가 사망한 후 이씨는 부여군 아들집과 인천, 경기 안양 등 딸네 집을 오가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돈구씨의 동생 성구(城九·59·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씨는 “끌려가던 형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마당에 나뒹굴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막내딸 명자씨(40)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오빠이지만 어머니가 오빠 이야기를 늘 입에 담고 살았다”며 “어머니가 죽은 줄 알았던 오빠를 보고싶은 마음에 혹시 몸이라도 상하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전·안양〓이기진·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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