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소장으로 알려진 김학만씨(69)가 자신을 찾는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은 김숙희씨(68·여·경북 예천군 예천읍 노하리)는 “오빠는 학교 다닐때 부터 남자답고 똑똑했다”며 그의 성공을 기뻐했다.
김씨는 “안동에서 혼자 하숙하며 사범학교를 다니던 오빠가 6·25전쟁통에 소식이 끊긴 후 부모님은 둘째오빠 소식만 기다리다가 돌아가셨다” 며 서운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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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때 인민군에 징집돼 갈때만 해도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는데 형님이 평양 체육대학 교수가 되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50년 동안 생사를 모르고 지내온 형님 김홍정씨(67)의 생존 소식을 전해들은 연정씨(65·농업·강릉시 연곡면 신왕리)는 “돌아가신 부모님은 항상 형님소식을 기다리며 눈물지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형 홍정씨와 헤어진 것은 15세 때. 마을 앞 냇가에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큰형 홍정씨는 의용군에 징집되어 가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
○…“지난해 가을 인터넷에서 북한인명사전을 뒤져보니 형님이 김책공대 강좌장이라고 돼 있어 살아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연락이 오다니….”
맏형 백영철씨(78)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동생 영방(永枋·64·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씨는 “72년과 76년에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형 영철씨가 북으로 가게 된 것은 50년 8월경. 46년에 서울대 공대(전기공학)를 졸업하고 시간강사로 출강하던 영철씨는 당시 다른 학자들과 함께 평남의 흥남질소비료공장에 시찰간다며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는 것.
백씨는 그러나 “50년 1·4후퇴때 북한에서 사람이 와 ‘남편이 북에서 잘 살고 있다’며 형수님과 조카들을 데려갔다”고 말했다.
○…큰형 윤석양(尹錫養·69)씨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석관(錫觀·65·전북 전주시 진북동)씨는 “이리농림학교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큰아들을 그토록 그리던 부모님은 94년과 95년 차례로 돌아가셨다”면서 “아버지가 큰아들이 숨진 것으로 확신하고 20여년전 결혼전에 숨진 처녀와 영혼 결혼을 시키고 제사를 지냈다‘며 울먹였다.
석관씨가 큰형을 마지막 본 것은 50년 가을. 의용군에 징집돼 김제초등학교에서 훈련을 받던 형에게 담밖에서 양말과 내복을 전해 준 것이 마지막이었다.
○…북한 적십자사가 보내온 이산가족 생사확인 의뢰자 명단에 있는 이일걸씨(71)의 아버지 이민석씨(92)와 첫째 동생 승환씨(64)는 올 3월과 9월 각각 사망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현재 부산에서 교사로 있는 둘째 동생 이익걸(李益杰·59·부산 사하구 감천동)씨는 “큰 형이 북한에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6·25전쟁이 나던 해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가 갑자기 실종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회부·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