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가능한 경우는 두 가지. 첫째는 돈이 옛 안기부(현 국정원)의 예산일 경우, 둘째는 97년 대선 직전의 ‘세풍(稅風)사건’처럼 기업 등 외부에서 조달됐을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돈을 집권당의 선거자금으로 전용한 것으로 ‘국기(國基)’에 관계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국가안위에 관한 정보를 다루는 권력기관의 극소수 공무원이 그 위세를 이용해 정치에 개입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전망이다. 어느 경우든 그 파장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검찰은 일단 첫번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억원대의 자금을 많은 기업에서 모았다면 어느 고리에서인가 ‘꼬리’가 잡혔을 가능성이 높지만 계좌추적 과정에서 그런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정원 주변에서도 문제의 돈이 안기부 자체 자금일 경우 안기부가 ‘비밀스러운’ 용도에 사용하는 ‘예비비’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국정원 전문가는 “과거 안기부 예비비는 국가원수의 해외방문 지원이나 밝힐 수 없는 정보사업에 사용돼 왔다”며 “그 규모는 아직까지 전혀 밝혀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참고로 90년대 말 국정원의 공식 예산은 7000억원 가량이었으며 그 외에도 다른 국가기관에 분식돼 책정된 안기부 관련 예산도 상당액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검찰은 안기부가 자체 재산을 매각해 생긴 돈 또는 이자수익으로 자금을 조성했거나 기업 등에서 모금해 조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당분간 검찰 수사는 안기부 모(母)계좌의 입출금 상황을 보다 정밀하게 추적해 그 실체를 규명하는 데 모아질 전망이다.
검찰은 이같은 추적결과를 근거로 안기부와 신한국당 관련자들을 소환해 진상을 규명한다는 방침이지만 정치권 등의 반발이 거세 수사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