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여권이 안기부자금을 이른바 ‘통치자금’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정치권에서는 상식에 속한다.
안기부 자금은 정보기관의 특성상 그 규모를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각 부처 예비비 등의 명목으로 은닉된 예산도 많다.
이와 관련, 지난해 국회 예결특위에서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의원은 “은닉분까지 다 합치면 안기부 예산은 1조원이 넘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치권으로 전용되는 액수도 천문학적이라는 것이 안기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증언이다. 전직 안기부원 정인영씨는 98년 월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96년 안기부 예산 중 1062억원이 정치자금으로 전용된 의혹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는 여당의 선거자금으로도 충당할 수 있는 액수.
통치자금은 안기부 기조실장이 실무를 전담하고 대통령에게 직접 재가를 얻어 집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안기부장도 그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은밀하게 취급된다는 얘기다.
그 규모는 5, 6공 때에는 엄청났으나 김영삼(金泳三)정부를 거치며 줄어들었다고 한다. 김대중(金大中)정부에서는 아예 없어졌다는 것이 현 여권관계자들의 주장이다. 98년 4월 김대중대통령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참석 차 출국할 때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과거에는 관행이었다”며 안기부자금을 전달하려 했으나 김대통령이 화를 내며 이를 거부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 자금난에 시달리는 당정의 고위관계자들이 지금도 국정원 자금에 대한 유혹을 느끼고 있으나 김대통령의 ‘노터치’ 입장이 워낙 확고해 엄두도 못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황유성기자>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