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셈 의미-전망]'한반도 평화 선언' 채택 예정

  • 입력 2000년 10월 11일 18시 47분


제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96년3월1∼2일·태국 방콕) 개최가 임박한 96년 초 당시 윤병세(尹炳世·47·현 주제네바 공사) 주싱가포르 공사참사관은 평소 친분이 두텁던 싱가포르의 고위 관료로부터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98년 2차 회의는 영국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거의 확정됐다. 2000년 3차 회의는 아시아 국가에서 열 차례인데….”

윤공사는 그 관료가 주는 암시를 금방 알아차렸고 즉각 본부로 이 사실을 보고했다.

“ASEM의 정례화는 회원국이 모두 바라는 일이다. 3차회의 개최국을 언제 정한다는 원칙이 현재 없다. 우리가 지금 나서면 반대할 국가가 없을 것이다. 새 천년 ASEM을 서울에서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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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곧바로 극비리에 3차 회의 유치에 나섰다. 일본 중국 등이 뒤늦게 낌새를 차리고 뛰어들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운 상태. 윤공사는 이 공로로 그해 외교부에서 ‘정책건의 1등상’을 받았다.

유럽연합(EU) 15개국과 아시아 10개국 등 25개국 정상과 EU집행위 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20,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ASEM에는 이처럼 극적인 과정이 숨어 있었다. 도대체 ASEM이 뭐기에.

▼ASEM의 출범▼

94년 10월 고촉통(吳作棟)싱가포르총리는 프랑스 방문중에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ASEM’을 제의했다. 외교관들은 “‘다자외교의 달인’인 고총리의 국제적 감각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사건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동아시아는 유럽을, 유럽은 동아시아를 원하는 절묘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용(龍)’들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계속하며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고 유럽도 아시아를 미국의 독무대로 방치할 수 없었던 것.

ASEM이 미국이 중심이 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달리 경제 재무 협력 외에 정치대화 사회문화교류도 나누는 포괄협력체로 출범하게 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고 정부 관계자는 말했다. EU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통합을 이루어 경제 재무분야에 대한 개별국가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정상회의 의제의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1,2차 회의▼

1차 방콕 회의는 한때 제국주의국가와 식민지로 총부리를 겨눴던 유럽과 동아시아가 과거를 역사에 묻고 서로 ‘동반자’가 되자고 한 ‘상견례’의 자리였다. 한국으로서는 양자외교와 지역외교, 국제정치가 한 회의장에서 이뤄지는 ‘다중외교’를 본격적으로 실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98년 2차 런던회의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살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ASEM이 과연 아시아―유럽간의 실질적 협력체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는데 외환위기가 그 협력의 필요성을 고조시켰기 때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금융위기 극복 방안으로 ‘고위기업인 투자촉진단 파견’을 긴급 제안해 회원국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EU는 ‘아시아의 금융 및 경제 상황에 대한 별도 의장성명서’를 통해 아시아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외환위기에 속수무책이었던 APEC과 대비되면서 ASEM은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서울 ASEM의 과제▼

오준(吳俊)외교부 ASEM 담당 심의관은 “출범 5년째를 맞는 서울 ASEM은 아시아와 유럽간 협력의 방향과 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국민의 입에서 “ASEM이 뭐기에 정부가 이 호들갑이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의장국인 정부가 이번 ASEM에 제안한 신규사업을 보면 이같은 고민이 배어 있다. 정부는 유라시아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구축해 양 지역간의 인터넷 서비스를 원활히 하고 관련 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계획이다. 또 프랑스와 공동으로 제안한 장학사업은 2500만달러 규모의 장학기금을 조성해 매년 유럽과 아시아의 교수 교사 학생 각 500명씩을 교환할 방침이다. 이밖에 ASEM의 향후 10년간 발전방향과 중점 협력분야를 규정한 기본문서 ‘아시아―유럽 협력체제 2000’이 채택되고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서울 선언’을 통해 ‘6·15공동선언’ 이행에 대한 ASEM 차원의 지지가 있을 예정이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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