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英 수교발표 의미]北, 對서방 관계개선 '急流'

  • 입력 2000년 10월 20일 00시 25분


영국의 로빈 쿡 외무장관은 19일 서울에서 북한과의 외교 관계 수립을 공식 발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개막 전야에 '축포’를 울렸다.

쿡 장관의 이날 발표는 ASEM에 참여하는 유럽의 한 나라와 북한의 개별 외교 관계 개선을 뛰어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박차를 가해온 대(對) 서방 관계 개선의 중대한 결실이기 때문.

쿡 장관이 본국이 아닌 서울에 와서 대북 관계 개선을 발표한 것은 '대북 관계 공동 개선’이라는 ASEM 정신을 현장에서 천명하는 일종의 '모양 갖추기’로 보인다.

ASEM이 끝난 뒤 발표될 공동선언문에는 "ASEM 가입국이 개별 또는 공동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인도적 원조, 경제 협력, 투자 증대를 꾀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것도 따지고 보면 남북관계 개선이 대 서방 관계 개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길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북한 지도부가 대 서방 관계 개선 없이는 경제 위기가 체제 위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 정책은 '남북관계→미―북관계→대 유럽관계 개선’으로 빠르게 이어져 왔다. 마치 정교하게 짜여진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조명록(趙明祿)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교환 방문의 촉매가 됐고, 이들의 교환 방문이 북―영 외교관계 개선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유럽국가들이 '대북관계 개선에서 미국보다 앞서 나가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상황에서 미―북관계의 급속 질주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는 북한이 6일 미 국무부를 통해 '테러 반대’를 공식 천명한 것도 동인(動因)으로 작용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 '북한〓테러국가’라는 유럽국가들의 인식을 불식시켜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과 활발한 외교적 접촉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북한의 활발한 대 서방 관계 개선은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란 점에서 한국 입장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일각에선 북한이 대 서방관계 개선을 서두르면서 내부는 더욱 단단히 조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결국 북한도 '대세’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제균기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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