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국가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AECF 2000’에 반영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프랑스는 의장성명서나 별도성명으로 이를 특별히 강조하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반면 중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국가들은 ‘부당한 내정간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이에 일부 유럽국가는 서울회의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비전을 내세울 수 없다면 ASEM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후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너무나 다른 유럽과 아시아간 협력체인 ASEM의 ‘태생적 한계’가 서울회의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3차례의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내려진 결론은 ‘봉합’이었다. ‘AECF 2000’은 ‘21세기 ASEM의 비전’ 부분에서 ‘민주주의 존중, 법의 지배, 평등, 정의, 인권 존중’을 명시했다. 대신 ‘협력분야별 우선순위’에서는 ‘정치대화는 회원국의 국내 문제에 대해 직접 또는 간접적인 간섭을 해서는 안되며’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유럽국가들은 여전히 불만인 듯하다.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정치 안보분야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EU가 아시아지역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서울 ASEM이 이 문제를 완전히 덮어두기로만 한 것은 아니다. 특정의제를 정하지 않은 채 산만하게 진행됐던 회의방식을 완전히 바꾸기로 한 것. 이는 근본적 문제를 계속 외면해서는 ASEM의 질적 발전을 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영진(崔英鎭)외교통상부 외교정책실장은 “아시아와 유럽이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 등에 대해 공통분모를 찾는 데 주력해 왔다”고 말하고 “이런 차원에서 앞으로 특정주제를 정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2002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릴 제4차 ASEM부터는 예민한 사안들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있을 전망이다.
<문철기자>full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