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Digital]학력속여 군입대 33년 복무 물거품

  • 입력 2000년 11월 9일 19시 31분


군대에 가기 위해 학력을 속인 것도 죄인가. 더구나 33년간 직업군인 생활을 잘 해온 사람의 군인신분을 그 때문에 박탈한 것이 온당한가.

경북 시골마을의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중퇴했던 채모씨(54). 지난 66년 농사를 짖다가 공군에 지원입대하려던 채씨는 군인법상 하사관이 되려면 중졸 이상의 학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망설이던 그는 허위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하사관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그 뒤 중사에서 상사로, 준위로 진급을 거듭했다. 우수 하사관으로 표창도 7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속인 학력’이 끝내 채씨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조부의 재산상속 문제로 채씨와 다투던 친척이 그의 허위학력 기재 사실을 군 당국에 고발한 것. 채씨는 중학교를 졸업하지 않아 임용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99년 공군하사로부터 준위 임명을 모두 취소당했다. 이에 따라 군 경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퇴직금과 연금도 받지 못하게 됐다.

그는 “하사관 지원자가 부족했던 당시에는 입대시 학력이나 나이를 속이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도 이제 와서 군인신분을 박탈한 것은 부당하다”며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이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조병현부장판사)는 지난 3일 “학력을 허위로 적어넣은 사실이 분명한 이상 하사관 임용은 위법하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채씨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적 안정성을 위해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채씨는 “군인에게는 학력보다 건장한 체격과 정신력, 나라를 위해 봉사하려는 자세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며 “잘못은 인정하지만 열심히 살아온 과거를 되찾기 위해서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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