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력 키우기〓이총재는 대입 수능시험 전날인 14일 유성근(兪成根) 김부겸(金富謙)의원 등 입시생 자녀를 두고 있는 소속 의원 10여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했다. “얼마나 걱정이 되느냐”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는 등 예상치않은 격려인사를 들은 의원들은 “총재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의원들은 재판하는 날이면 으레 이총재의 안부 전화를 받는다.이들의 명단은 매주 당 기조국에서 총재실로 올린다.
영남권의 한 의원은 얼마전 이총재로부터 “술이나 한 잔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물론 이 의원은 이총재와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의원은 몇 명 더 있다.
이총재는 또 소속의원 후원회에 거의 예외 없이 참석한다. 당 총재실의 출입문도 ‘누구든 허물없이 만나겠다’며 열어놓았다. 모두 ‘협량(狹量)한’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한 것이다. ‘법대로’ 이미지만으로는 국민은 물론이고 당내 지지조차 얻기 힘들다는 인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회창식 비전’ 제시〓20일 경제분야 전문가들의 모임인 안민포럼에서 이총재는 경제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몇가지 주장을 했다. ‘재벌이든 뭐든 시장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영미(英美)의 기업 지배구조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등등.
포럼에 참여했던 한 대학교수는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에게 “이총재가 경제에 대해 그렇게 자신있게 자기 견해를 피력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총재는 이달초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신관치(新官治)’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며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통일분야에서도 이총재의 목소리에 힘이 붙고 있다. 북한의 경제를 도와주고 평화를 얻는다는 ‘전략적 상호주의론’이나 북한에 대한 일방적 퍼주기가 아닌 ‘남북한 호혜적 상호이익 관계론’ 등 이총재의 주장이 남북정상회담 당시만 해도 ‘수구(守舊) 논리’로 비쳐졌으나, 최근에는 상당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얘기다.
▽여전한 한계〓이총재의 변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일각의 이총재에 대한 냉소적 시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총재가 조건없는 등원 결정을 내리기 위해 24일 총재단회의를 소집했을 때도 일부 부총재들 사이에선 “총재가 자기 혼자 결정하고 부총재들을 들러리로 세우려 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장외투쟁 등 곤란한 문제는 당직자들을 앞세워 추진하고, 국회정상화 등 모양 좋은 결단은 총재 개인의 독자적 결단으로 미화한다”는 푸념도 들렸다.
여야관계에도 본질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평가다. 이총재가 폭넓은 정치를 시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여권의 움직임을 염두에 둔 상대적 처신이어서 정치권의 기류가 달라지면 이총재의 움직임도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총재는 26일 여야영수회담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여, 조건없는 등원결정이 정국안정보다는 정국주도권 잡기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