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최고위원은 50년대 말부터 40여년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호흡을 함께 한 ‘DJ의 그림자’로 통한다. 그리고 그는 김대통령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악역’을 자주 맡았다.
지난 ‘4·13’ 총선 때도 그의 별명은 ‘저승사자’였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공천에서 탈락시킬 대상자를 선정해 미리 통보하고 설득한 것도 그였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행여 권최고위원의 전화를 받을까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낙천자들이나 중하위 당직자들의 ‘자리’를 만드는 것도 권최고위원의 역할이었다. 16대 총선 낙천자들의 모임인 ‘일오회’ 멤버들이 대거 정부산하기관 등의 고위직으로 취직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앞장섰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홍규(趙洪奎)한국관광공사 사장, 양성철(梁性喆)주미대사, 채영석(蔡映錫)고속철도공단 이사장 등이 대개 그의 ‘덕’을 입었다. 당직자나 옛 동지들의 민원창구도 대부분 권최고위원이 맡았다.
그런 과정에서 권최고위원에 대한 원망과 그를 둘러싼 인사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그에 관한 각종 루머도 널리 유포됐다.
당내에서는 ‘막후실세’로 통했다. ‘대통령과의 거리〓권력’이라는 등식이 상식화된 우리 정치판에서 권최고위원은 당연히 막강한 영향력을 갖춘 인물로 비쳤다. 때로 권최고위원의 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