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의 이념논쟁은 우선 ‘북한은 과연 변화하고 있느냐’로부터 시작된다. 진보적 입장은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표피적인, 전술적인 변화가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의 과정에 이미 들어섰다고 본다.
▼글 싣는 순서▼ |
① 보수·진보갈등 현주소 ② 북한은 변하는가 ③ 상호주의와 속도조절 ④ 연합제와 연방제 ⑤ 사회균열과 통일교육 ⑥ 이념갈등 극복을 향하여 |
반면에 보수적 입장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식 사회주의’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고, 설령 변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술적인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실체는 무엇이냐’로 이어진다. 진보적 입장에서는, 김정일위원장은 국내외 정세에 밝고 유능하며 쾌활한 성격의 지도자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로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지난 남북정상회담 때, 그리고 남쪽 언론사 사장단을 접견했을 때 보여준 모습이 그의 진면목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보수적 입장에서는, 그는 ‘무자비한 독재자’이며 ‘국가적 파산에 책임이 있는 무능한 권력자’인데 지금은 국제사회와 남한사회에서의 인상 전환을 위해 텔레비전을 이용했을 뿐이다.
북한의 변화여부와 김정일위원장의 본질에 관한 이러한 논쟁은 결국 북한의 본질에 관한 논쟁으로 연결된다. 진보적 입장에서는, 북한은 김일성(金日成)주석으로 대표되는 항일운동가들이 세운, 그리하여 친일파가 득세한 남한에 비해 정통성을 지닌 국가로 출발해 친일파의 숙청과 토지개혁 등 당시 역사가 요구하던 과제들을 해결했다.
따라서 김일성을 스탈린의 대리인으로, 북한을 소련의 괴뢰국으로 보던 견해는 잘못된 역사인식이었다고 주장한다. 보수적 입장에서는, 김일성의 항일운동 경력 자체를 왜곡 또는 날조로 보거나, 설령 김일성의 항일운동 경력을 인정한다고 해도 소련점령군의 지원 없이는 집권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북한을 소련이 만들어 준 위성국가로 파악한다.
이러한 논쟁은 자연히 대한민국의 본질에 관한 논쟁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진보적 입장의 좌파에서는,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이끄는 국가의 출현을 방지하고자 한 미국의 보수적 정책에 따라 미국이 한(조선)민족과는 무관한 유엔의 이름 아래 친일파를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들에 따르면 6·25전쟁은 민족사적 정통성을 가진 북한이 그렇지 못한 남한을 ‘미 제국주의’와 ‘반동세력’으로부터 해방하려 했던 ‘민족해방전쟁’이었고 이 ‘정의로운 전쟁’에 미국과 유엔은 개입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므로 북한이 남한을 배제시킨 채 미국하고만 평화협정을 맺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는 것이다.
보수적 입장에서는, 이러한 견해는 도저히 수용될 수 없다. 대한민국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6·25남침을 막지 못했더라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돼 소련권에 편입됐을 것이고 공산화 통일된 한반도의 운명은 지난날 소련제국에 편입된 동유럽 위성국가들의 운명과 같았을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논쟁은 자연히 미국의 역할에 이어진다. 진보적 입장에 선 사람들 가운데 왼쪽으로 훨씬 더 나간 그룹에, 미국은 한반도 통일의 결정적 장애이다. 미국은 남한의 ‘실질적 주인’으로, 한미 군사동맹을 통해 남한을 보호하거나 사실상 ‘지배’하며, 봉쇄정책으로 북한을 곤경에 빠뜨린 결과 북한은 경제적으로 피폐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거나 아주 철수시키고 한미 군사동맹도 파기시키며 남북한의 군대를 대규모 상호감군시킨 뒤 한반도를 중립화통일시켜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반면에 보수적 입장에 선 사람들은 한―미 우호와 군사동맹을 중시하고 앞으로도 미군의 남한 주둔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논쟁은 불가피하게 북한의 군사적 위협론으로 연결된다. 진보적 입장에서, 북한이 남한에 대해 군사적 위협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미 연합군이 북한에 대해 군사적 위협을 주고 있다. 군사비 부담을 대비해 보거나 전투력을 대비해 보아도 북한이 열세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북한의 위협을 전제로 한 국가보안법도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보수적 입장에서는, 북한의 군사력은 여전히 위협적이고 심지어 북한이 ‘남침’의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남한은 한반도의 ‘표면적’인 화해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종전처럼 국가보안법의 기본 틀과 튼튼한 군사력의 유지에서 힘써야 한다.
남과 북, 그리고 미국에 대해 각각 이렇게 볼 때 진보주의자들에게 오늘날의 대북지원은 너무나 당연하고 속도가 조절되기보다는 오히려 빨라져야 한다. 도덕적으로도 마땅히 그래야 하고, 현실의 안목에서 볼 때 남북사이의 긴장을 크게 완화시키기 위한 평화비용의 부담이며, 미래의 안목에서 볼 때 장차 발생할 통일비용의 부담이다. 상호주의란 상인들 사이의 상거래에서 있는 것이지 같은 동포 사이의 통일대업에서는 적용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에게 ‘일방적인 대북 시혜’는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되겠고, 상호주의가 적용돼야 하겠다. 비전향 장기수를 보내주었으니 납북어부와 국군포로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 한 예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해서도 의견은 선명히 대립된다. 보수주의자들에게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한이 내세워 온 고려연방제로 반드시 이어지게 마련이고, 진보주의자들에게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한이 말해 온 국가연합에 비슷한 것으로 실험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마지막으로 대북협상의 자세론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남쪽이 남북회담이 깨질까 두려워 해 북쪽에 저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북한이 저질렀던 대남 무력도발과 테러리즘에 대해 사과를 받아내기는커녕 사과하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들은, 그렇다면 남쪽은 사과할 것이 없느냐고 반문하면서 사과 문제에 매달리다가는 남북관계가 냉각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 한국 이념갈등 변천사 ▼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이념 갈등은 일제 식민지배 시기에 시작됐다. 독립운동가들이 복국(復國)의 미래상을 그리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수립을 지향하는 우익과 사회주의국가의 수립을 지향하는 좌익으로 나뉘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볼 때 분단의 씨앗은 이미 이 시기에 뿌려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건국과 통일의 방략을 놓고 좌우익 이념대결은 치열하게 벌어졌다. 결국 반공―반소―친미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의 건국을 지지하고 북한을 적대적 불법집단으로 보며 대한민국 주도 아래서의 남북통일을 옹호하는 이승만(李承晩)노선이 승리한 반면에,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통해 한반도에 단일국가를 세우자는 김구(金九)노선은 ‘용공’으로 비판됐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이승만노선이 사실상 ‘국시(國是)’로 받아들여졌고 김구노선은 김구의 본질적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용공’시됐다.
6·25전쟁은 국민의 사고방식을 반공―반북―친미로 고착시켰고, 좌파는 물론 중간파마저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그러나 휴전과 더불어 좌파 또는 중간파를 모두 포함한 혁신세력의 목소리가 자라나면서 좌파적 성격의 진보당, 점진적 개혁주의 성격의 민주혁신당의 창당으로 이어졌다.
이때 진보당은 계획경제와 평화통일을 제창했고, 여기에 위협을 느낀 이승만정권에 의해 당수 조봉암(曺奉岩)이 처형됐고 진보당은 해산됐다.
4월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무너지면서 지난 시대엔 동면을 강요당했던 혁신세력이 사회대중당과 사회당 등으로 집결돼 남북협상,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 복지사회주의적 성격의 계획경제 등을 표방했고 때로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부르짖기도 했다.
5·16쿠데타는 혁신세력을 철저히 탄압하면서 반공―반북―친미의 ‘국시’를 재확인했다. 따라서 그 이후, 30년 가까이 혁신세력은 제?注恬??내기가 어려웠다.
다만 6공 후반 이후 민중당과 민주노동당 등이 출현해 혁신운동의 명맥을 겨우 이어갔다.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인정하는 전제 아래 성사됐다. 이렇게 남북협상과 대북포용노선의 공식화가 이뤄짐에 따라, 남한에서는 주로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를 중심으로 이념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그 논쟁은 자연히 북한의 역사 전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북한에 대결해 온 남한과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이며 남북통일을 어떤 미래상을 갖고 추구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이어지면서 더욱 깊어지고 있다.
김학준(본사 편집·논설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