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장관급회담]"장 총재 비난말라" 남측 강력항의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55분


제4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남북은 초반부터 ‘힘 겨루기’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양측은 13일 회담 기조발언에서도 상대편의 껄끄러운 부분을 짚어나갔다.

남측은 장충식(張忠植)대한적십자사 총재에 대한 북측의 비난과 남측 취재기자의 활동제한을 집중 거론했다. 남측은 북측이 회담장에서 장총재를 비난하자 역시 강력히 항의했다. 북측도 남한 국방부의 ‘주적(主敵)개념’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양측의 이같은 ‘공세적 태도’는 이번 회담에서 6·15공동선언 이후의 남북관계를 중간 평가하되 각자의 기본입장만큼은 한 차례 더 분명히 해놓고 넘어가자는 전략적 고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이런 설전 속에서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에 획기적 진전이 있었다는 데 공감하고 장관급회담이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중요한 장치임을 확인했다.

남측이 이날 기조발언을 통해 제안한 것은 크게 △이산가족 문제 해결 △6·15공동선언 이행과정에서의 문제점 △남북경협 및 교류활성화 방안 등 세가지다.

남측은 특히 올해의 남북관계가 ‘일회성 행사’에 그친 부분이 많다는 일부의 비판을 의식한 듯 새해에는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력히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구체적인 제안을 일일이 내놓지는 않았다. 북측은 대신 “남측의 제안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날 오후로 예정됐던 수석대표 및 실무대표접촉을 연기한 채 장시간 남측 제안에 대한 검토작업을 벌였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냉랭한 남과 북▼

“이행과정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

“기본원칙을 똑바로 지켜야 한다.”(전금진·全今振 북측단장)

제4차 남북 장관급회담 둘째날인 13일, 남북 수석대표들은 인사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호한 목소리로 상대를 몰아붙였다. 이례적인 설전이었다.

▽전단장〓장군님께서는 늘 선배들에게 ‘노당익장(老當益壯)’이라고 말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혈기왕성하게 일하라는 뜻일 것이다.

▽박장관〓1차회담 때 두 정상의 역사적인 사건을 아름다운 대화로 잘 이어나가 예술작품을 만들자고 했다. 하지만 이행과정에서 부족한 점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잘 보완해 겨레에게 훌륭한 선물을 안겨주자.

▽전단장〓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 그렇지만 역풍도 조금 있다. 이는 통일열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지혜롭게 제압하고 순탄하게 해나가야 한다.

▽박장관〓백마디 말보다 한가지 실천이 중요하다.

▽전단장〓남측의 이행의지를 믿겠다.

▽박장관〓6·15공동선언 이행에는 이의가 없지만 지켜가는 과정에 자그마한 우여곡절은 있었다. 자그마한 것에 집착하면 큰 것을 잃는다.

▽전단장〓작은 것은 상관없다는 말에 동감이다. 하지만 공동선언의 기본원칙에 위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원칙을 똑바로 지키는 데 유의하자.

▽박장관〓당국 입장만 제대로 정리하면 되지 개인 의견에 일일이 귀기울일 필요 없다.

이같은 신경전이 계속된 탓인지 양측 대표는 1시간45분간의 회의가 끝난 뒤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 밖으로 나왔다. 전단장은 회의결과를 묻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고, 박장관도 “오후에 지켜보자”며 즉답을 피했다.

양측은 회담 중간중간 민감한 현안을 놓고 날카롭게 맞붙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은 “공동선언 이행에 도움이 안된다”며 주적(主敵)개념을 거론했다. 이에 남측은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지면 해결될 문제”라고 맞섰고, 장충식(張忠植)대한적십자사총재 문제에 대해선 “일부 인사의 발언에 일일이 대응하면 내정간섭 시비가 있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철희기자·평양〓공동취재단>klim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